이곳은 아직 따뜻한데

이곳은 아직 따뜻한데

[ 논설위원 칼럼 ] 이곳은 아직 따뜻한데

조인서 목사
2013년 01월 30일(수) 15:12

[논설위원 칼럼]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는 작금의 한국교회가 귀 기울여 듣고 가슴에 새겨야 할 예언적 메시지가 나타난다. 소위 '케슬러(Arthur Koestler)의 체험'이다. 아마도 케슬러라는 사람은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며 풍요롭게 살았던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프랑코의 반란군 군대가 진격해 온다는 보고를 분명히 받았다. 그는 한 친구의 별장으로 온 집안 식구를 데리고 피신하였다. 그곳은 매우 편안하고 안락하였다. 프랑코의 군대가 그날 밤 사이에 그 별장으로 들이닥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총살당할 가능성이 매우 많았다. 그는 당장 짐을 꾸려서 도망가야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날 밤 날씨는 그의 마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매우 추웠다. 그에 반하여 집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설마 오늘 밤에 당장 들이닥치겠어?' 그는 따뜻한 곳을 떠나 도피의 길로 접어들기 싫어서 상황을 애써 합리화 하면서 따뜻하고 안락한 그곳에 그대로 머물기로 작정했다. 그 결과 그는 포로로 잡혔고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동료 저널리스트의 구명운동으로 인해 목숨을 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종종 무너지기 때문에 그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긍정의 사고도 좋고,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철저한 현실 인식이 없으면 그야말로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지난 1백28년 동안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과 형극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눈물의 기도로 세웠다. 박해를 이겨내고, 수많은 순교자의 피 흘림 위에 세워졌다. 지금 우리는 지난 세대의 피땀으로 맺은 열매를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또옥 똑' 따먹고 있다. 우리의 목회 현장은 마치 잘 꾸며진 별장과 같아서 풍요롭고 따뜻하며 안락하다. 새벽 기도가 힘든가? 당회 안에서 관계가 꼬여서 목회가 힘든가? 사례비가 적어서 생활이 안 되는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되짚어 보면 이 모든 행태가 사실 배부른 흥정이다.
 
몇 년 전 사석에서 S물산의 사장과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 최고 기업의 사장이니 얼마나 풍요롭고 즐거울까 궁금했다. 그는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고 했다. "목사님, 저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원형 탈모증에 걸렸어요!" 그는 머리카락이 빠져 듬성듬성 구멍 난 머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옛날 '기계 충'으로 인해 빵꾸(?) 난 머리 같았다. 세상은 생존을 위해 마누라 빼놓고는 다 바꾸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지금 어떠한가? 지금 기독교는 정말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면서 복음 증거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돌을 맞고 있는 형국이 아니다. 우리의 그릇된 모습으로 인해 조롱을 당하고 돌을 맞고 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잠언 14:1) 지금 우리는 미련한 여인처럼 공든 탑을 내 손으로 허물고 있다. 아직 우리의 목회 현장은 따뜻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호시절이 계속 되겠는가? 비상한 각오로 허리띠를 졸라 매고 과단성 있는 조치를 실천해도 생존이 가능할까 의심이 되는데 막연하게 '잘 되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조바심이 난다.
 
슬프다.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반란군은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온기가 있을 때 대책을 세우고 결연한 믿음의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지금 나는 따뜻하다.

조인서 목사 / 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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