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자여사 장남 윤기회장

윤학자여사 장남 윤기회장

[ 인터뷰 ] 윤학자여사 장남 윤기회장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2년 11월 02일(금) 14:59

[파워 인터뷰]

"고향 잃어버린 분들이 아리랑 부르며 온돌방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남은 사명"
재일교포 위한 시설 '고향의집' 운영하는 윤기회장
'고아들의 대모' 윤학자여사 탄생 1백주년 기념식 참석차 내한

   
'고아들의 대모' 윤학자여사 탄생 1백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여성플라자. 개회식을 마치고 심포지엄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 시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한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윤학자여사의 장남 윤기회장(숭실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 일본사회복지법인 마음의가족 이사장)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26세의 나이에 공생원을 맡아 이끌었던 청년은 세월이 흘러 이제 70년의 노신사가 되어 어머니를 기억하며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40년을 한국에서 살았고 지금 인생 후반전은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고향의 집을 만들어드리고 김치 먹고 아리랑을 부르고 온돌방에 자도록, 이분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명으로 삼고 있어요." 잠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뜻밖에도 '고아'가 아닌 고령의 재일동포들 이야기부터 꺼냈다. 1968년부터 1982년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한국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한 그는 오사카 사카이시를 중심으로 고베, 교토 등에 재일교포들을 위한 시설 고향의 집을 세우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스스로는 "어머니 아들이라고 처음부터 각별하게 인간애가 투철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인 셈이다. 최근에는 일본인 모리야마 사토시목사가 윤학자여사의 생애에 대해 쓴 '진주의 노래'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현재 윤기회장을 비롯해 4남매 중 3남매가 부모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장녀 윤청미 사망).

지난달 26일 행사를 위해 일시 귀국한 그는 31일 목포에서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추진대회를 마친 후 1일 일본으로 곧장 돌아갔다. 그는 "열심히 살았지만 늙어서는 쓸모없는 존재처럼, 비록 몸은 일본에 살지만 고향 하늘만 쳐다보는 분들이 9만 명이 넘는다. 이중 75세 이상이 2만명"이라며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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