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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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06월 20일(수) 15:59
예로부터 개는 집을 지키는 짐승으로 인간에게 충직하고 가장 친근한 동물입니다. 최근엔 시각장애인 안내견, 인명 구조견, 마약 탐지견, 사냥견 등 그 분야에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우수한 능력을 지닌 품종들도 있습니다. 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당 한구석에 묶여 있던 신세에서 벗어나 주인과 함께 침대에서 자고, 외출할 때는 외투(?)와 신발에 리본까지 갖춘 귀족견들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넘어 가족의 범주에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죠.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닷새가 지나면 주인을 알아본다'는 옛 속담처럼 개는 의리와 충성, 지능이 우수한 짐승입니다.
 
그러나 개와 관련된 속담은 비웃음이나 좋지 않은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남의 말을 무시할 때 "동네 개 짖는 소리만 못하게 여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돈만 있으면 귀인으로 대접받는다는 의미의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접두사로 개가 쓰이면 '개만도 못한 놈'을 비롯해 대부분 욕설로 쓰입니다. 사람에게 그토록 충직하건만 이처럼 표현 방법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인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저널리즘 영역에서 언론의 규범적인 역할을 표현할 때 흔히 '네 가지 개 모델(4 dog model)'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감시견(watch dog) 기능입니다. 언론은 일반 공중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애완견(lap dog) 기능은 감시견의 반대 개념입니다. 애완견 모델은 전체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미디어 현상입니다. 최근 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애완견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지나치게 친 정부적이거나 특히 경제적 실체로서 광고주에 대한 꼬리 흔들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시대의 미디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표현입니다.
 
공격견(attack dog)의 관점은 아직까지 저널리즘 학계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격견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위, 특히 선거보도에 치우쳐 있어 일반화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견 형태는 특종의식에 사로잡히거나 게임식 선거보도, 특히 미확인 보도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언론의 보호견(guard dog) 모델은 기존의 이분법적으로 정리되던 감시견과 애완견 효과를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보호견은 미디어의 역할이 권력구조를 보호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보호견의 경우 애완견 접근방식과는 달리 권력자 개인이나 권력의 실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시스템 전체를 보호하려 한다는 점이 차별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호견 미디어는 기존 권력시스템에 위협이 된다면 시스템 보호를 위해 설사 재임 중인 대통령일지라도 공격한다는 점이죠. 개인 절대권력의 교체를 통해서라도 권력 시스템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보호견의 입장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델이 가장 이상적인 언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독공보는 현재 어떤 모델일까요? 또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기독공보는 어떠해야겠습니까? 감시견이나 보호견이 이상적이라 말씀하시면서 정작 본인과 관련됐을 때는 애완견이길 바라는 이중적인 잣대로 미디어를 대하시지는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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