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지배자의 차이

지도자와 지배자의 차이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김회권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19일(화) 09:41

지도자란 일정한 권한과 권위를 위임받아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도하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그 권한과 권위 한계 안에서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공동체가 합의한 목표를 성취시키는 촉매자다.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일정량의 권위와 권한을 부여한 공동체의 평가와 감시에 늘 노출되어 있다. 지도자가 얼마나 타당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는가는 지도자에게 권한과 권위를 위임한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검증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단위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위임된 권력과 권한을 초월하여 과잉 지도력을 발휘하려는 유혹에 시달린다.
 
이처럼 위임받은 권한과 권위 경계 너머까지 지도력을 발휘하려는 지도자를 지배자라고 부른다. 지배자는 지도자가 부패하고 타락한 경우 출현하는 권력강제자(power enforcer)이며 권력남용자(power abuser)다. 이런 잠재적인 위험성을 예리하게 직시하고 지도력을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화한 한국교회의 경우 영적 지도력의 순기능 혹은 역기능 여부를 판별하고 검증할 만한 내적인 장치가 잘 작동되지 못한다.
 
일부 교회에서, 장로 및 목사 신임투표제를 도입하여 교회의 영적 지도력을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평가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아직은 대세가 되기에는 이르다. 특히 교역자의 권위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영적인 맹목주의가 교역자들의 지도력에 대한 투명하고 공개적인 점검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서의 오랜 전통에서 보면,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지도자들(왕, 방백,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은 하나님의 상시적(常時的)인 감찰 앞에 벌거벗은 존재처럼 노출되어 있었다. 전제 왕권을 휘두르던 왕들도 하나님의 어전회의(御前會議)에서 파견된 예언자들의 탄핵과 비판 앞에 전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왕상 22장; 암 7:10-17).
 
요즈음 다시 정치의 계절에 돌입했다. 한국교회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어떻게 하면 참된 의미의 성경적인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숙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 MB 정권의 기독교적 지향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우환과 탄식이 깊어져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지도자란 '하늘이 낸다'는 식의 막연한 운명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세기를 향도(嚮導)할 지도자를 미리 발굴하고 길러내는 일에 전력경주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고 있다. 깊은 경륜과 세계적인 안목을 갖춘 지도자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식으로 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중심과제를 능숙하게 다루고 한 시대를 앞서가는 영적 경륜을 구비한 지도자들을 주문생산(注文生産)해 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경륜과 실력과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구비한 지도자는 가내 수공업적인 생산 양식으로 양성된다. 지도력은 이상적인 모범을 통하여 모방되기 때문이다. 참된 지도자 배출은 가내수공업적인 수작업(手作業)이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공정(工程)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일관되어 흐르는 이상적인 지도력은 메시아적인 지도력이다. 그것은 메시아 예수님의 지도력이었다. 그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자기낮춤을 통해 마음을 감화감동시켜 통치한 이상왕이셨다. 그는 인간 왕에게 위임된 지도력이 필연적으로 권력남용과 권력강제로 변질된 점을 직시한 후 제자들에게 로마제국의 가이사(Caesar)의 권력(공포, 권력, 폭압)강제와 권력남용 정치, 헤롯 가문의 폭압정치를 배우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권력강제와 권력남용의 희생물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어린 돌보심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지도력을 닮은 대통령을 발굴하고 배출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가일층 분투해야 한다.

김회권교수/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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