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얻으려면

공감을 얻으려면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최원탁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19일(화) 09:38

어느 주일날 50대 중반의 부부 집사가 등록했다. 첫심방 예배를 잘 드리고 충성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등록한지 한 달쯤 된 후부터 덕스럽지 못한 뒷말이 들려왔다. "강단 꽃꽂이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비용으로 선교해야 하고 강단은 사철분재 화분을 항상 두면 된다고 이사람 저 사람한테 말하며 목사님이 지혜가 없으니까 돈 들여 꽃꽂이 하게 하는 것이지, 지혜 있는 분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가만 두었다. 그런데 또 다른 말이 들려왔다. "목사님을 우리가 잘 받들면 교만해진다. 그러므로 생신 때, 추석 때, 설 때, 성탄절 때 절대로 선물을 해서는 안된다"고 여전도회 임원회의 때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만 두었다. 그런데 또 다른 말이 들려왔다. "부흥회를 하는데 부흥강사 대접하는 것은 교회 재정에서 대접해야지, 개인이 대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이 집사 저 집사한테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만 두었는데 대다수 교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부는 몇 달 뒤 온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다른 교회로 가셨다.
 
공감을 얻지 못한 말은 군중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부정적 시각의 말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 전통과 양식, 방법과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말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주장과 생각, 의견과 논설에 대한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희망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항상 있어야 할 공감은 사람됨의 소중한 윤리이며, 가치이며, 힘인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공감은 자신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데서 나오며 존경과 사랑을 실현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생각하는 태도가 진정성을 가질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의견과 뜻을 공감시키려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방식과 의견과 감정과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며 존중해야 한다.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곤경과 실패, 아픔과 역경, 갈등과 반목에 대한 이해와 사랑, 관심과 위로, 희망과 용기의 말로 북돋아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여야 하고, 이기적인 아니라 이타적이여야 하며, 소유적이 아니라 공유적이여야 하고,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비난이 아니라 존중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비협력적이 아니라 협력적이여야 하고, 관망이 아니라 참여적이여야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이 좀 더 희생적일 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내가 남에게 기대한 만큼 남도 나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존중히 여기고 배려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어야 질서가 확립되고 협력적 미래 비전도 실현할 수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는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감은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는 교우들에게 우리의식을 증진하고 상생하는 조정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최원탁목사 / 전주 현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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