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02월 28일(화) 09:52

그날이 오면,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리까

그 날이 와서,오호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날이 오면,심훈) 

소설 '상록수'의 저자로 알려진 심훈은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의 한 사람입니다. 이 시는 빼앗긴 조국의 회복에 대한 열망이 격정적으로 표출돼 있습니다. 1901년생인 그는 경성제일고보 4학년이던 19세 때 3ㆍ1 만세운동에 참가해 3월 5일 피검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와 중국 망명길에 올라 항주 지강(之江)대학에서 공부하고 이후 1924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나라 없는 울분을 문학으로 표출했습니다. 1930년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으며 이후 충남 당진에 내려간 그는 오직 '밭을 갈듯 창작에 전념하겠다' 하여 그 사택을 '필경사(筆耕舍)'라고 불렀으며 이 곳에서 쓴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 15주년 현상모집에 당선돼 그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인 1936년 9월 6일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안타깝게도 그토록 바라던 '그날'을 보지 못합니다. 그의 시 '그날이 오면'이  수록된 시집은 일제의 검열로 출간되지 못하고 해방 이후 빛을 봅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는 그의 옥중서신은 그가 만세운동으로 수감돼 있을 때 어머니께 쓴 편지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도무지 약관의 나이라 믿어지지 않을만큼 그 배포와 기백이 당당합니다.
 
그는 걱정하실 어머니께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 자동차에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가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또 옥중생활에 대해서도 "날이 더워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아 오르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는 생지옥 속에 있지만 이상하게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어느 누구도 슬픈 눈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머님!…우리가 천번 만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 리는 없겠지요.…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또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저는 어머니보다도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3ㆍ1절을 보내며 이제 곧 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의 위정자들께서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과 옥중서신을 되새겨 보시길 권합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