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02월 07일(화) 10:45
학창시절 읽었던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단편 중에 '입춘대길'이란 소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아들의 숙제가 '입춘대길'을 한자로 써오라는 것인데 아들의 말을 들은 무학(無學)의 아버지는 한자는 커녕 한글도 모르기에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밤새 고민 끝에 옆집 대문에 붙어있는 축서(祝書)를 떼어다 아들에게 주며 큰 소리쳤습니다. "봐라,걱정할 것 없다고 했지? 네가 자는 동안 애비가 써놨다." 아들은 자랑스럽게 담임선생님께 제출했는데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너희 아버님은 왜 'ㅇㅇ일보 사절'을 써주신게냐?" 그저 웃어넘길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엔 자신의 무식으로 아들이 기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말에 양수리 근처를 다녀왔습니다. 입춘 추위 때문인지 아직 강물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꽁꽁 얼은 강 밑에선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고,그 속에선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다닙니다. 눈이 있다고 해서 사물의 전체를 보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사물의 형상만 보고,어떤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봅니다. 얼어붙은 강이 형상이라면 그 밑에 흐르는 강물은 본질입니다. 같은 칼을 보고도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보고,강도는 사람을 위협하는 흉기로 보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 사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두 눈을 부릅 뜨고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눈썹과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과 가장 먼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죠. 자신의 속눈썹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주 현상 중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육신은 보이지만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질은 보이지만 정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형상은 보이지만 본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계의 원로학자 한 분은 "지금 이 시대는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보고 느끼는 문화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 조차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고 야단들이다"라며 소위 트위터,페이스 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진정한 소통'보다는 '무엇을 먹었는지,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자신을 드러내는 세태를 우려했습니다. 
 
입춘을 전후해 춥다는 것은 옛 어른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대한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 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날을 기리고,한 해 동안 좋은 일과 기쁜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갖가지 기원을 써붙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해를 지나 설도 지나고 이제 입춘도 지났습니다. 새해를 시작하고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새 출발만 다짐하는 세시풍속 속에 머무르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뜻을 세우면 그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실행에 들어가야 합니다. 봄을 맞이하려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넘어, 봄을 만끽하기 위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펼쳐야만 합니다. 말과 혀가 아니라 행함으로 진실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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