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의미

세월의 의미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1년 12월 27일(화) 16:30
"나는 밤하늘의 숱한 별들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게 기대어 쉬는 모습을 지켜보며 밤을 지샌다." 학창시절 우리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별'이란 작품의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마지막 수업'도 그의 작품인데 모국어를 잃어버린 한이 일제 식민시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처녀 단편집 '풍차방앗간 편지(Lettres de mon Moulin)'에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풍차로 밀을 빻는 마을에 증기 기계 방앗간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풍차 방앗간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이제 코르니유 영감의 방앗간 만 남게 됐습니다. 물론 그곳에도 손님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감님의 풍차는 왠일인지 계속해서 돌고 돕니다. 영감님은 해질 무렵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밀가루 포대를 절름발이 당나귀에 싣고 마을을 가로질러 왔다 갑니다.
 
어느 날 도시에 나가 있던 영감님의 단 하나 뿐인 손녀가 약혼자와 함께 결혼 허락을 받기위해 방앗간을 찾았습니다. 젊은 예비 부부는 할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밀 대신 희멀건 석회석을 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코르니유 영감은 그동안 무너져 내린 석회 부스러기를 빻아 밀가루인 척하며 실어 날랐던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에 죽고 싶어 하는 영감님 앞에 밀 포대를 실은 마을 사람들의 당나귀가 줄지어 몰려 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영감님은 죽고 풍차 또한 멈추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과 서민생활의 애환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도데의 작가적 명성을 떨치는 데 한 몫합니다. 옛것을 고집하는 풍차 방앗간 노인이 기계 문명에 밀려나는 모습은 세월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그것은 마치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을 만들고 있는 저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인 듯하여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해마다 이 맘 때 그랬듯이 거리에 자선냄비가 등장했습니다. 거리에선 종소리와 함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흘러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선 '석별'이란 노래로 잘 알려진 올드 랭 사인은 1759년 스코틀랜드의 계관시인 로버트 번스가 민요 선율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로 원 제목은 '그리운 옛날'이라고 합니다. 이 곡은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가 등장하기 전인 1900년대 초 애국가 곡조로 사용되기도 해 우리와는 꽤 인연이 깊은 노래입니다.
 
오래된 흑백영화의 송년 파티 장면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이 음악은 특히 비비안 리,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 '애수(Waterloo Bridge)'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거리에서 올드 랭 사인을 들으며 상념에 젖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층입니다. 세월 가는 것이 아쉬워질 나이가 된 분들이죠. 세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본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일정 나이가 지나면서부터는 코르니유 영감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고 건강이나,재물,명예 등 중요한 그 무엇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은 아직도 "가슴마다 파도치고" 있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한 해의 끝자락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떠나보내지 못할 미련과 안타까움이 남지만 이제 떠나는 2011년을 보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새해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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