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9~24일

12월19~2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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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4일(수) 17:03

월- 예레미야에게 임한 두 환상
본문: 렘 1:11~19
찬송가: 490장(구542장)
 
하나님은 때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환상으로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우상숭배로 인한 그 어두움을 보시고 두 가지 환상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그에게 임한 첫번째 환상은 살구나무 가지 환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살구나무가지를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신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살구나무는 앵두과에 속한 나무로 유대지역에서 봄이면 가장 먼저 꽃을 피는 나무다. 성경에 소개된 살구나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고(민17:8),성막등대를 살구꽃 형상의 잔과 받침과 꽃으로 장식하였다(출25:33-34). 또한 야곱은 살구나무를 이용하여 양을 번식시키기도 하였다(창30:37).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그 환상을 꼭 이루시겠다는 약속이다. 12절에서 하나님은 "네가 잘 보았도다"라고 칭찬하시면서 예레미야가 받은 사명을 확신을 가지고 전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두번째 환상을 보여 주신다.
 
끊는 가마 환상은 앞으로 유다에게 임할 환란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마가 끊는다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큰 환란이 유다에 임할 것을 말하는 것이며,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 졌다는 것은 북쪽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즉 북방나라인 바벨론 군대로부터 침공을 받는 유다가 큰 환란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을 보여주신 환상이다. 바벨론의 침공은 그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라는 것이다. 즉,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5절에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고 했다. 이처럼 바벨론을 불러드린 것은 하나님이시다. 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 너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알았으니 담대하게 내가 준 사명만 잘 감당하라는 것이다.
 
유다의 멸망을 유대인들에게 선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사명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환상으로 용기를 주셨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을 때 삶도 사명도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예레미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확신하며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견고한 성읍,쇠기둥,놋성벽이 되셔서 지켜 보호할 것이다.(18,19절)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며 깨우침이 필요합니다. 이 민족을 깨우쳐 주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민준기목사 / 성심교회 



화-말씀을 따라          
성경: 창세기 12:1-9            
찬송가: 374장 (구 423)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아브라함은 누가 뭐래도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에 대해서 복잡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의 일생이 바로 믿음에 대한 정의가 된다. 믿음대로 산 결과로 그는 복의 근원이 된다.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다. 사실 성경을 계속 보면 아브라함도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본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처음에는 불완전했다.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여김을 받은 때는 75세에 하란을 떠날 때보다 10여년이 지난 때였다.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대 순종의 믿음으로 인정 받은 때는 창세기 22장에서 자기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로 다시 약 30년 이상 지난 때였다. 그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이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도 말씀을 따라 순종해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꼭 믿음이 좋은 사람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 "나는 믿음이 적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크게 순종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작은 부분부터 순종해보자.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만 작은 일부터 순종하며 점차 믿음의 분량도 커지고,축복의 분량도 커지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의 기도는 응답받았다.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다. 가장 선하고 가장 충만한 때를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대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다. 그래서 복을 받았다. 이 축복의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영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이 약속,그 자체가 복이다. 그래서 이 약속 안에 있는 사람,이 약속을 믿는 사람,이 약속 안에서 소망을 가지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복은 이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이 복된 사람을 통해서 먼저 그 사람을 복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쳐 나게 하신다.
 
내 믿음이 나 하나의 믿음이 아니라 내 믿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믿음을 얻고 나의 행복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고,나의 신앙생활로 인해서 그 누군가가 구원을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고향을 떠나라. 네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그 약속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때이다.
 
<오늘의 기도 >
우리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아브라함처럼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삶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정선목사 / 대연교회


수-마태의 파격 선언     
마태복음 1: 1-14
찬송가 115장(구 115장)
 
약속과 성취,이것은 성경을 이루는 두 기둥이다. 구약성경이 끊임없는 계약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약속이었다면 신약성경은 그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루어진 구원 역사는 다윗에 이르러 정점을 이룬다. 사무엘하 7장 16절인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으로 인해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이 결코 변할 수 없는 유대인의 메시야관이기도 하였다.
 
오늘의 본문은 그 메시야의 오심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신약성경을 여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첫머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하고 있다. 사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파괴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다윗왕가가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면서 그 시작을 다윗왕가의 족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다윗 가문을 이루는 구원의 족보라면 자랑스런 조상들의 혈통을 보존해 오는 것이기 때문에 명예와 자랑으로 가득차는 것인데,그 역사에서 내놓고 말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운 조상들의 역사를 마태는 함께 공개하고 있다. 창녀로 변신하여 시아버지를 속이고 후손을 이은 다말의 이야기,기생 라합과 이방 여인 룻을 통해 위대한 성군인 다윗에게 룻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그리고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솔로몬이 출생한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감추어야만 할 부끄러운 족보를 통해서 마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마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은 파괴되거나 소멸된 것이 아니라 추잡한 혈통으로 이어오는 다윗의 족보이지만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마태의 위대함이며,그가 주도면밀한 사상가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약은 어떤한 혈통,어떠한 스캔들,어떠한 범죄를 하였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며 이사야 11장 1절인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결실할"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이 땅에 지울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마태가 자신의 책을 기록한 목적이다.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파격적으로 선언을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마태는 위대한 대 신학자였다.
 
우리에게 성탄은 무엇인가?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것들로 켜켜이 쌓여 있는 나에게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감동의 소식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사도 요한의 감격적인 선언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부끄럽고 추한 나에게서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덕주목사 / 한들출판사


목-영원한 언약 신앙
본문: 창2:16-17
찬송가: 285장(구209장)
 
성경에 언약이라는 말이 창세기에서 25회나 기록되었고 창세기 이외에 모세 오경과 시편,그리고 선지서에서도 20여 차례나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창조,인간창조,그리고 인간타락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인간타락을 예견하셨고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을 태초로부터 계획되었고 준비하셨다.
 
1.행위(조건)언약

창세기 2장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계약 조건이 분명히 설정되어 있고 순종에 대한 보상과 계약 파기에 대한 형벌이 제시되어 있다. 행위언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의 계약이다. 계약의 약속은 영생이다. 계약의 상징은 생명나무이다. 계약의 조건은 완전 순종이며 계약 파기 시는 영원한 사망의 형벌이다. 하나님과 에덴동산의 아담과의 행위언약은 아직도 소멸되지 아니하고 유효하다.
 
2.구속언약

행위언약에서 실패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 하나는 구속언약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언약이다. 구속언약은 삼위일체의 대표자이신 성부와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이신 성자 사이에 인간구원을 위해 맺은 언약이다. 에베소서 1장 4-7절의 언약에서 성자는 성부가 그에게 주신 사람들에 대하여 의무를 맡았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했다. 성부는 그의 구속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성자에게 약속했다. 이 영원한 구속언약은 은혜언약의 기초가 되었다. 만일 성부와 성자 사이에 영원한 평화의 약속이 없었다면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도 언약이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계획은 영원 전부터 세워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벌써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을 말씀하셨다.
 
3.은혜언약

은혜언약은 구속언약의 성취이다. 은혜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은혜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선택 받은 인간이다. 은혜언약을 가능케 하신 분은 예수님시다. 은혜언약에는 인간의 공로가 필요 없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은혜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은혜언약은 신앙과 순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조건적 언약이지만 인간의 공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언약이다. 은혜언약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게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언약이다.
 
따라서 예수님 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행위언약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이다. 믿는 자는 행위언약에서 해방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은혜언약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려고 성육신 해주심 감사합니다. 이땅에서 그언약 신앙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만영목사 / 예수비전교회


금-에벤에셀,그 반성과 전진
본문: 삼상 7:3-12
찬송가: 400(구 463)
 
기념비에는 후손들이 자랑스러운 선조의 행적을 기념하고 칭송해 달라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후손들이 이것만큼은 꼭 지켜 주었으면 하는 선조의 마음이 들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기념비를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서 이긴 이후에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고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신 것을 기념하여 세운 돌이 바로 에벤에셀이다. 여기에서 에벤에셀은 승리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무엘상 4장 말씀 속에 나타나는 에벤에셀은 커다란 패배의 상징이다. 사무엘상 4장 1절에서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패배를 만회하고자 대책을 내놓았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다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있게 하여 승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첫번째 싸움보다 더 크게 패배했다. 게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겨 버렸다. 하나님은 언약궤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보다 하나님을 믿고 모시는 이스라엘의 영의 중심을 중요하게 보시고,그 안에 거하고자 하셨다. 이스라엘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언약궤를 모셨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사무엘상 7장에서 다시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맞붙게 된다. 빼앗겼던 언약궤는 블레셋 진영으로부터 기럇여아림으로 되돌아 왔다. 이스라엘은 이제 진정으로 여호와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게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말한다.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명령에 따라 미스바로 모였다.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이 한 것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종일 금식하고 회개한 것'이다. 물을 길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회개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했던 자신들의 죄를 철저하게 뉘우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이다.
 
회개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아울러서 새로운 힘을 공급받게 된다. 그 힘이란 한 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하는 믿음이다.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리면서 이스라엘의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그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님 앞에서 잘못했을 때는 회개하고 다시금 일어서서 주님의 은혜로 전진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죄악에 그대로 쓰러져가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옵고,에벤에셀을 기억하게 하시어 반성과 회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택현목사 / 광주서남교회



토-희망의 근거
본문: 눅1:1-4
찬송가: 105(통일105)
 
요즘 거리에는 성탄 트리가 넘쳐나고 캐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성탄절을 즐기려는 듯 보인다. 예수님의 성탄을 믿지 않아도 믿는 척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비신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 '천사가 목자에게 말을 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동방의 박사라는 사람들이 별을 따라 왔다는 것이 사실일까?'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믿지 못하면 예수님의 다른 이야기도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오늘 성경 말씀은 신약의 전체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데오빌로는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던 그 시대,예수님의 십자가형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살던 그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 데오빌로는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예수님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는 누가복음 1장 1절에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을 신화나 동화를 읽듯이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가도 그 예수님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의심하면서 그 되어진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 살펴본 바를 데오빌로에게 차례대로 써서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가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목격자들과 말씀의 증언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잘 정리해서 데오빌로를 비롯한 1세기의 사람들에게 쓴 이유는 바로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누가복음의 서문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주요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는 믿음이 있어야만 믿을 수 있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식의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토대는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으로 시작된 역사적 사건들에 근거하고 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의 믿음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삶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다시 확실히 하며 성탄절을 보내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교회보다 세상이 더 성탄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이 성탄이 바로 역사적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고 더욱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하는 절기로 삼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석호목사 / 동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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