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 '촛불예배' 단상

'촛불 집회', '촛불예배' 단상

[ 논설위원 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6월 22일(수) 14:45

 
최근에 대학등록금 반값에 대한 논쟁으로 인하여 정치권이 시끄럽다. 정치권이나 청와대에서는 이 이슈가 다시금 전 국민적인 촛불집회로 번질까 초긴장 상태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여중생들이 미군 차에 치여 사망한 일로 인한 촛불집회, 또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촛불집회, 전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다. 이제는 '대학등록금 반값에 대한 항의성 집회가 전 국민적인 저항으로 나타나는 촛불집회로 확산될까'라는, 걱정과 근심이 정치권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장독대에서 가장 큰 장독 뚜껑 위에 촛불 하나를 켜놓고 먼 길을 떠난 자녀를 위해서, 전쟁에 나간 아들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늘에 기도와 소원을 빌며, 무사귀환하기를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위로받기를 원했던 어머니들의 그 가냘픈 마음이 촛불집회(?)의 원조다. 작은 바람에도 꺼질 듯 위태로운 촛불! 그 흐릿한 불빛의 흔들림에 마음 졸이며 빌었던 어머니들의 마음은 그래도 따뜻했으리라.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었으니까.
 
학생 때로 생각된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으나,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했다. 그 후 고등학교 졸업반 때인가, 영화로 만들어져 나온 '부활'을 보게 되었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불운의 여인 카츄샤도, 귀족 그러나 방탕아 네퓨르도프도,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촛불 하나씩을 켜들고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며, 서로 그 기쁨을 나누는 그 장면에서 비로소 톨스토이의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해를 가질 수 있었고, 네퓨르도프의 참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새길 수가 있었다. 추악한 인간성이 거듭남의 인간성으로 변화하는 힘은 '부활신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실, 촛불이라고 하면 우리 기독교 예배와 더 많은 관련이 있다. 교회에서는 성탄절, 송구영신, 혹은 신년 축하예배 때에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고 그 촛불 예배 시간에 촛불점화는 꽤 깊은 감동을 받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성경에는, 촛불보다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로는 일곱 금촛대가 있다. 성전을 항상 밝히고 있는 불이다. 촛대라 했으니 촛불일 것이다. 횃불에 대한 내용도 있다. 사사기 7장에 미디안과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야기이다. 사사 기드온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였다. 그리고 한 순간에 일제히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하고 외치게 했다. 결국 미디안 군이 혼비백산되어 도주하고 말았다. 여기서 횃불은 큰 촛불이다. 광야 생활 40년은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했다. 그 불기둥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촛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의 우리나라 원초적인 신앙에서, 혹은 다른 기타 종교에서, 그리고 우리 기독교와 성경에서의 촛불, 횃불의 의미는 너무도 순수하다. 기도로 하나 되는 마음을 담고 있고, 소원과 위로와, 격려와 응답이 담겨 있다. 변함없는 소원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언약과 확신이 담겨 있다. 승리의 미래를 보고 있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묻어 나타나 있다. 그런 신앙 안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모두가 다 하나되자고 하지 않아도 하나되게 하는 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권에서 촛불집회의 나타남에 대해서 그리도 긴장을 하는가? 신앙의 순수성이 정치적으로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촛불의 시작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어떤 형태이든지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다. 영적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촛불이 되지 못한다면 그 빛을 받아서 전달하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 모습은 너무도 종교적이다. 정치적으로 오염된 촛불을 우린 교회 안으로, 성경 안으로, 그 순수함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촛불집회라 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촛불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촛불을 켜든 군중집회가 아니라, 촛불 켜든 아름다운 마음, 따뜻한 마음 간절한 소원, 그리고 성취에 대한 확신, 위로이며 격려이고, 용기를 북돋움이며, 그리고 참 믿음이다.

강병만
목사ㆍ청담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