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지 않으면 치료약 개발도 없어

돈 되지 않으면 치료약 개발도 없어

[ 교계 ] <나눔과 섬김> 자본의 논리 속에 죽어가는 제3세계 환자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6월 15일(수) 10:16

댕기열은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5천만 명 가량이 이 병으로 고생을 한다.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한데다가 걸린 즉시 40도가 넘는 고열을 동반한다. 특히 어린이나 영양실조에 걸린 여성들은 즉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병은 전세계 1백여 개국에서 발병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평생동안 댕기열에 걸려본 사람의 수는 무려 20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댕기열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의학계에서의 연구는 아직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 병이 주로 발생하는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이기 때문에 댕기열 치료약을 개발해봤자 제약회사들에게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시장논리에 잠식된 인류애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은 마케팅 담당 부서에서 구매력이 높은 잠재 고객들에 대한 시장조사가 진행된 후 비로소 신약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나 댕기열 같은 병들은 구매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주로 감염되는 질병이기 때문에 제약회사에서는 선뜻 이 병에 대한 치료약을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이 최근 앞을 다투어 개발하는 신약의 종류는 수익성이 좋은 노화 방지, 성욕감퇴 방지, 주름 방지 등에 관한 약에 치중되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제약업계에서 신경을 쓰지 않는 질병들을 가리켜 '소홀히 다뤄지는 질병(neglected diseases)'이라 명명하고 있다. 말라리아, 콜레라를 비롯해 Elephantiasis(코끼리 피부처럼 피부가 두꺼워지는 병), schistosomiasis(체내 기생충이 침입해서 생기는 병), trachoma(감염성 눈 질환, 시력을 잃게 됨), river blindness(기생충에 감염되어 실명하게 되는 질환), Chagas(벌레에 의한 감염,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발생), African trypanosomiasis(파리에 의한 감염, 아프리카에서 주로 발생)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병들은 치료약이 없거나 치료약이 있더라도 더 깊이 있는 연구가 병행되지 않아 약효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에서 2000년 사이에 신약 상품화 허가 건수는 총 1천3백93건인데 이중 '소홀히 다뤄지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건수는 16건에 불과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수요에 따른 시장 조정 기능이 전혀 가동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 약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제3세계에는 약이 있더라도 일반 의약품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아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리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지난 2006년 전세계의 2천1백만 명이 말라리아나 결핵으로 죽었다. 2천1백만 명의 사망자 가운데 90% 이상은 개발도상국가로 분류되는 1백22개국의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제약회사에서의 가격 횡포는 개발도상국가들의 국민들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악몽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1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Gleevec)의 가격 때문에 환자와 그 가족들이 강력하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글리벡은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5~6년에 불과하던 환자 평균 생존 기간을 20년 이상 늘린 획기적인 치료제.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었다. 한 알당 2만3천45원인 약을 증상에 따라 하루 4~10알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한달 복용 최대 비용이 6백90만원이나 된다. 현재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 한해 보험적용은 되고 있으나 이 약을 보조치료제로 사용해야 하는 위장관기질종양 환자나 골수단구성백혈병 환자는 자비 부담을 해야 하는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약가조정신청 등으로 약가 인하 요구가 고조되자 정부는 2009년 9월 글리벡의 가격을 14% 인하하도록 직권인하 고시했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2월 고등법원에서 승소, 정부와 환자들에게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노바티스측은 한때 글리벡 공급 거부 입장을 밝히며 협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환자본인부담금을 일부 지원하는 등 우호적 전술을 쓰면서 가격을 관철하려 애쓴 적도 있다.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보건복지부와 노바티스 분쟁은 현재 글리벡 후속약제로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신약 타시그나가 출시될 때 약가 책정에 누가 유리한 고지에 서느냐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바티스는 해마다 글리벡 판매를 통해서만 25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 전세계가 제약회사와 약값 때문에 씨름

 
이러한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지난 2007년 1월 태국 정부는 냉장보관이 필요하지 않는 2차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애보트 사)'와 함께 '에파비렌즈(머크 사)', 혈전치료제 '플라빅스' 등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키로 결정했다.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는 특허권자외의 제3자에게 특허권의 사용을 허락하는 것으로, 특허의약품의 복제약을 생산, 값싸게 공급하는 조치를 말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값 비싼 오리지널약을 구입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강제실시'는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세계무역기구도 지난 2001년부터 회원국들에게 강제실시권을 보장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대신 강제실시를 하는 대가로 해당 특허권자는 '로열티'를 받는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강제실시를 거부한다.
 
강제실시를 발동한 태국 정부의 행동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가만히 손놓고 있을리는 없었다. 애보트 사는 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요한 7가지 치료제를 철수하겠다고 경고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에이즈치료제인 푸제온을 공급하는 로슈 사는 지난 2004년 한국에서 책정된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푸제온 시판 허가까지 받았지만 끝내 약을 내놓지 않았다. 서적 '하늘을 듣는다(윤가브리엘 지음/사람생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 윤가브리엘 씨는 푸제온 없이 2년을 버티다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윤 씨는 "사람들은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을 수 없어서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청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청구했지만 2009년 6월에 기각됐다.
 
전세계 무역 10위권의 한국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데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9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환자들은 제약회사들의 약값 횡포에 무방비 상태다.
 
최근 에이즈는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약만 잘 복용하면 완치는 안 돼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됐다. 문제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특허로 독점해 비싼 약값을 요구한다는 것. 세계의 수 억 명의 사람들은 비싼 약값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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