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아닌 '새 이웃'으로

탈북자 아닌 '새 이웃'으로

[ 문화 ] 한반도평화연구원, 무산일기 시사회 및 감독과의 대화 모임 개최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1년 06월 07일(화) 11:22

"절대 북한에서 왔다는 말 하지마. 너도 살아남아야 할 것 아니야."

   
▲ 영화 무산일기.
지난 4일 영화 무산일기의 특별한 시사회가 열린 씨네코드 선재. 탈북자 전승철이 남한에서 적응해가는 삶을 그린 영화가 상영된 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감독이 소개되는 순간 객석에서는 일제히 탄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영화에서 본 전승철, 한달 월급으로 고작 20만원을 받는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전전긍긍하던 탈북자, 길에서 주운 강아지 백구가 유일한 친구였던 그가 '감독 박정범'이란 실제 이름으로 관객들 앞에 선 것.

한반도평화연구원(원장:이장로)에서 마련한 이날 시사회에는 신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서울기독교영화제 관계자, 기독변호사회(CLF) 회원들, 한국리더십학교 학생들, 새터민 사역자 등 각계 각층의 기독교인 2백여 명이 자리했다.

영화 무산일기를 "반성문을 쓰듯이 만든 영화"라고 소개한 감독은 체육교육학과 선후배로 만났던 전승철 군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암투병중 사망한 승철이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 함께 영화로 만드려다가 못한 것을 만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처음에는 동정과 연민의 관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승철이와 친해지면서 그게 창피해졌구요."

그래서일까. 감독과 각본, 주연 배우 등 1인 다역을 수행한 그는 토론 시간 내내 마치 죄를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불량배에게 맞는 장면도 직접 맞아가며 연기했을만큼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찍었다"는 말처럼, 그는 여전히 죄책감의 감정 속에 빠져있는 듯 했다.

"흥행하지 않아도 학교 극장을 빌려 상영하자는 생각"으로 찍은 영화라지만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은 무산일기는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10회 마라케쉬국제영화제 대상, 제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제13회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으며 각종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지난 4일 열린 시사회 현장.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한 탈북 청년이 감독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날 시사회에는 극중 승철이의 고향,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탈북자도 자리했다. 지난 2004년 탈북해 현재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그는 "예전에 영화에서처럼 일자리를 찾을 때 많은 편견에 부딪혔다. 이력서를 쓸때 강원도 어느 학교라고 쓸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교회에 가서도 동정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많이 느껴봤다"고 고백했다. 

수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저도 개를 기르는데 힘들때마다 승철씨처럼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뉴스에 보면 탈북자들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경우도 많던데 상하적으로 아니면 동정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남한 사람들과 달리 친구처럼 다가오는 그런 존재로 백구를 만드신건지 궁금하다"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영화를 본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불편함'으로 한데 모아졌다. 토론의 패널로 나선 부원장 임성빈교수(장신대)는 "영화 속에 교회가 많이 나오는데 기독교인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다소 불편하다.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만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새옷을 사입어야만 성가대석에 앉을 수 있는 현실이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 영화 무산일기에는 교회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감독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교회를 통해 정착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회가 탈북자들을 위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전 러시아 대사 이인호교수는 "우리 사회 탈북자가 2만명 밖에 안된다. 교회에서 이 사람들을 한 가정당 한 사람씩만 품고 인간대 인간으로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텐데, 그게 참 간단치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참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편함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가지 제안을 건넸다. "탈북자도 조금 불편한 말이고, 새터민도 조금 어색하니 '새 이웃'이라는 말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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