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신앙> 주님은 내 삶의 주인

<나의 삶 나의 신앙> 주님은 내 삶의 주인

[ 연재 ] 아모텍 회장 김병규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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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2일(수) 10:21
나의 일과는 새벽 5시 새벽기도로 시작하여 이후 오전 가정예배, 오후 2~3시 회사 신우회 예배, 그리고 잠들기 전 기도로 마무리된다. 기업인으로서 회사 경영이 나의 주업무이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며 가족, 직원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새삼 깨달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치열한 기업경쟁 속에서 전자부품회사 아모텍을 운영하며 필자는 부도 직전까지 가는 어려움과 스타 기업으로서의 성공, 믿었던 지인의 배신 등 수많은 일을 겪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김병규라는 한 인간을 다듬어가시고 성숙하게 하시는 크신 경륜을 깨닫고 감사하게 됐다. 불투명한 세상 속에서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가정도, 기업운영도, 우리의 모든 인생도 하나님이 이끌어가시고 우리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1956년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님들은 6ㆍ25전쟁을 겪으셨고, 나는 막내 형님과 10살차가 날 정도여서 형님과 누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원래 아버지는 당시 말을 50필 정도 가지고 있는 부자였지만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며 모든 재산을 잃은 후 우리 가정은 어려움에 허덕여야 했다. 형들의 고학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이를 당연히 여겨 고등하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할 때 조차도 중3학생들을 과외하며 학원비를 벌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나는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그 와중에서도 활발한 성격 덕에 과 대표는 물론 요들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며 여러 모임과 행사를 주관했다.
 
대학 때까지 내가 교회에 간 적은 어렸을 때 선물을 받으러 한 두번 간 것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들은 불교를 믿어 교회에 다니는 이들을 싫어하는 분들이었다. 이러한 집안에서 큰 형님이 집안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가지게 됐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형님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갈등이 극에 달해 집을 나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갈등이 원인이었을까? 1977년 형님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수와 함께 형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형님을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결국 형님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다시 하나님 없는 일상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의 삶에 신앙이라는 작은 파문이 일어나게 한 것은 당시 서울대 치의대를 다니던 나의 친구 이창호선교사(말레이시아 의료선교사, 치과의사)였다. 1980년 대학원 1학년 때의 일이다. 마음을 열고 진실한 우정을 나눴던 그 친구는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나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가 예수 믿기를 권하는 터에 큰 생각 없이 "알았어"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약속을 하면 꼭 지키는 성격이라 마음 속에 결단을 내리고 서울의 여러 유명한 교회들을 탐색했다. 여러 교회를 다닌 끝에 소망교회의 곽선희목사님의 설교나 목회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소망교회를 나의 교회로 정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매주 교회에 가면서 하나님을 만나러가기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출석했던 것 같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 이혜란을 만났다. 아내와 나는 만난 지 일년도 안돼 결혼을 약속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내를 만나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참 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은 순조롭지 않았다. 장인어른 이광수장로님은 동신교회의 설립 멤버로 독실한 신앙인이셨고, 우리 가정은 불교 집안이었던 터라 결혼을 준비하며 두 가정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파혼의 위기에 직면하자 나는 다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대학생 때 형님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했던 행동이라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린 기도였다.
 
하나님은 부족하디 부족한 사람의 울부짖음까지 들으셨고, 이후 결혼에 성공해 사랑하는 두 딸을 얻게 되었다. 결혼은 내가 처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해주고 신앙이 진일보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정리: 표현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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