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흔적을 지닌 바울

주 예수의 흔적을 지닌 바울

[ 연재 ] 사도바울행전III. 바울의 전도 여행(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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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6일(목) 15:44

며칠 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시민들의 태도가 한없이 싸늘하다고 느꼈다. 주 예수의 적대자인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찾아와 루스드라 시민들을 충동한 사실을 바울은 알지 못하였다.

바울은 어떤 반항적인 공기를 의식하였고, 잇따라 무리들이 야유하는 소리를 들었다. 군중은 바울에게 다가왔다. 돌멩이가 날아와 바울의 얼굴을 때렸다. 바울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그날 바나바는 다른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바울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바나바와 디모데 일가는 불안한 예감에 싸여 있었다. 그들은 곧 심상치 않은 사태를 알게 되었다.

   
▲ 바울(L. G. 블랑셰,18세기)
유대인에게서 충동을 받은 폭도들이 여전히 시내를 휩쓸고 다녔다. 바나바와 디모데는 폭도들이 집에 돌아간 한밤에야 바울이 버려져 있는 곳에 갔다.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은 살아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10년 전에는 바울 자신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장소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디모데가 바울이 돌에 맞은 장소에 입회하여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먼 훗날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할 때 바울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 3:10~11).

몸이 완쾌되지 못한 바울은 농민의 수레를 타고, 바나바와 디모데의 보살핌을 받으며, 동남쪽 48km 거리인 더베로 갔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상처는 평생 동안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상처를 소중하게 여겼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헤롯 아그립바 왕은 신으로 존경받기를 원하며 그것을 요구하다가 주의 사자가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었으나(행 12:23), 바울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 자기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에게 꾸중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누어졌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바울이 복음을 전한 지 1천8백여 년이 지난 1885년에 미국의 S. 스테레트 교수는 이고니온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8km 지점에서 '루스드라'라고 라틴어로 새긴 두툼한 돌을 발견하였다. 이 돌이 일찍이 이곳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다.

또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가는 도중에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의 폐허가 50군데 이상 있으며, 일찍이 이곳은 '일천 하나의 교회'라고 일컬어졌었다. 그만큼 이슬람 시대 이전에는 기독교가 부흥하던 곳이다.

스테레트 교수는 또한 이고니온에서 동남쪽으로 1백km 되는 지점에서 더베를 발견하였다. 더베의 유적은 광막한 카라-다하 산맥의 산자락에 있으며 사방은 광야이다.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으로 알려진 키비스트라는 동북 약 50km 지점에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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