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인간의 특권

행복은 인간의 특권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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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7일(수) 12:23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가? 당연히 행복 추구를 위해서다. 행복 추구는 온 세상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즉 우리 모두의 권리요 특권이다. 아니 의무이기도 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함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 아래 이 땅에 출현한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희랍 철인 소크라테스도 '행복은 인생의 최고의 선'이라고 천명했다. 그렇다면 그 누구나 벅찬 감격으로 자신의 인생을 수놓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여기서 인생의 비극이 싹튼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외적인 환경 요인이 자기의 만족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 허망한 것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교의식의 노예가 되어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에 사로잡혀 번민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자기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유대인의 명언 중 하나이다.

맹농아의 삼중고를 안고 평생 살아야 했던 헬렌 켈러는 자신에게 유일한 소망이 하나 있다면 죽기 전에 꼭 삼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라 했다. "만약 눈을 뜨고 본다면 눈을 뜨는 순간 에너 설리번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고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산보를 다녀온 후 석양에 빛나는 노을들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 먼 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오후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이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지내고, 마지막 날엔 아침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고, 오전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이 숲을 이룬 도시 한복판에 나가 네온싸인 반짝거리는 거리의 쇼윈도의 상품들을 살펴보고 집에 돌아와 이 삼일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드리고 영원히 암흑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역경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햇빛, 공기, 물 같은 값비싼 것들은 도리어 값없이 맘껏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상대적인 가치 밖에 지니지 못하는 것들의 제한적 소유 때문에 갈등 하고 있다. 롤러 메이는 '창조하는 용기'라는 책에서 창조에는 한계성이 반드시 필요함을 한 비유를 들어 이야기했다. 강물이 흐르려면 둑이 필요하다. 만일 둑이라는 한계가 없으면 강은 더 이상 강이 될 수 없다. 이 둑이 바로 한계이다. 놀라운 창조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한계, 즉 제약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 한계가 있음을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쓴 데이비드 도널드는 링컨이 그토록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읽은 책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성경을 가장 애독했고 다음으로는 이솝 우화, 그 밖에 단 몇 권의 책 밖에는 더 이상 손에 쥘 수 조차 없었던 경제적 한계가 도리어 그를 훗날 가장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게 했다는 말이다.

해마다 11월은 추수감사의 달이다. 청교도들 1백2명은 주후 1620년 영국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닻을 내렸다. 첫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먹을 것도 부족했다. 첫 일년 사이에 52명이 세상을 떠나는 쓰라림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첫 해의 추수를 마치고 먼저는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이웃의 인디언까지 초청해 감사 예배와 잔치를 벌였다. 우리는 절대자께서 나에게 주신 환경 여건을 초월하여 항상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모든 이웃에게도 사랑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긍적적이고도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어 행복도 자연히 누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의 모습이다.

강신원 / 목사ㆍ노량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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