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복음' 만이

오직 '복음' 만이

[ 논설위원 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9일(금) 13:18

며칠 전 유럽과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잠시 귀국한 선교사들의 선교보고를 듣게 되었다. 흔히 접하게 되는 선교 업적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선교전략에 관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세계선교에 대한 공통적 전략은 '무슬림화 되어가는 지구촌을 어떻게 구해낼 것이냐'에 있었다. 얼마 전부터 무슬림의 중앙 본부는 유럽의 프랑스와 아시아의 한국을 포교활동의 최대 거점으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밖에서는 상상 밖의 일들이 전개되고 있었다는데 놀라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 한국교회는 몇 십년 동안 부흥을 노래하면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라고 과시하고 있었다.

마치 17~18세기 유럽교회사를 보는 듯한 한국교회의 실상을 접하게 된다. 당시 유럽사회는 산업혁명의 조명 아래 무서운 변화의 조류 속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유럽의 모든 개신교 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선교사를 한 명이라도 더 파송하려고 힘쓰던 시기이다. 그러나 정작 유럽교회는 너무도 빠르게 교회만이 간직했던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스러운 복음의 능력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일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이러한 유럽교회를 걱정하는 소리들이 교회 안에서가 아닌, 타락한 세상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요즈음 언론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교회 실상이 바로 이러한 것 아닌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유럽의 텅빈 교회당들이 무슬림 집단에 팔려 무슬림 사원으로 둔갑한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과연 내일의 한국교회당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필자가 유럽교회사를 공부하면서 한국교회가 어쩌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럽교회의 사양 길을 따라가고 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럽교회의 몰락은 한마디로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대신 복음을 각색하여 마케팅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좀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복음만이 간직한 가장 본질적인 '십자가의 걸림돌'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시도가 바로 이 부분임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않은 것을 너무도 용감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웅변한다. 선포되는 말씀이 '어떻게 하면 회중을 만족시킬 것인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로 나간다면 아마도 죄인들이 만족할 때까지 교회는 변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여드는 회중이 수 만, 수십 만을 자랑한들 과연 그들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오직 복음만을 선포하겠다고 회개하며 결단할 때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만일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치지 않으면 교회만이 간직한 복음의 힘은 여전히 멎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성경이 제시한 마지막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때의 징조가 처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막가파 인생'들이다. '막가파'의 득세와 더불어 '막가파 교회'까지 등장한 것은 말세 증후군 중에 가장 실감나는 현상일 것이다. 죄인들의 기호에 맞추려다가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한 화려한 복음 흉내만 내는 막가파 모습을 교회가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의 막가파 포교전략을 아는가? 한 손에는 칼, 또 한손에는 코란을 들고 자살 테러를 통해 포교를 일삼는 무서운 세력(사탄)을 복음을 상실한 막가파 교회에게 맡길 수 없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듯이 교회의 진정한 역사는 잠자는 다수의 역사가 아닌 깨어있는 소수의 역사이기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소수의 한국교회만이 마지막 때의 희망이요 보루이다. 이것이 성경 속에 강조된 '마지막 남은 자'일 것이다.

송재식/목사ㆍ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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