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보듬으며 '삶'을 나누는 것

서로를 보듬으며 '삶'을 나누는 것

[ 지금은 다문화사회 ] 선교학적 관점에서 본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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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14일(목) 11:01
오현선 / 호남신대 교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누군가 "다문화야, 다문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두 명의 한국시민이 아기를 안고 길을 가던 한 아시아 여성을 보면서 수군거리며 하는 말이었다. '다문화' 혹은 '다문화 사회 시민교육'에 대한 계몽이나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다문화적 사회변화에 대해 자신이 편리한대로 이해하고 생각하며 표현하고 있다.

다문화는 둘 이상의 복수문화를 의미하기에 다문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집단 혹은 주체들에 대한 특성을 사회성원들이 모두 서로서로 애써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 산업노동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남성과 여성 이주 노동자가 이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의 인식부재, 일관성 있고 포괄적이지 못한 미디어의 관점과 보도관행, 현실을 따라 잡지 못하는 정책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다문화적 변화는 한국 남성과 이주 여성간의 결혼관계 이외의 관계 즉, 한국여성과 이주 남성간의 결혼이나 이주민 간에 이루어지는 결혼은 제외되는 폐쇄적 의미의 '다문화가정'으로 축소, 왜곡되어 진행되고 있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의 진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표방하고 있는 다문화 정책은 한 축으로는 이주민을 통해 생산 활동 인구의 부족을 채우고, 또 한 축으로는 저출산 사회의 내적 결핍을 축소된 의미의 다문화가정을 통해 해결해 가려는 한국사회와 한국시민 중심의 소수자 통합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주해 오는 노동자들의 경우 가족동반이나 정주를 근본적으로 불허하고,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정책아래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신분을 가지고 사는 일, 자신의 가족을 동반하여 함께 이주하는 일, 건강이나 신체적 손상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터를 갖는 일, 한국남성과 이주여성간의 결합이 아니더라도 다문화 가정으로 인정받는 일들을 소원하고 있다. 목회현장을 통해 이주민을 만나온 지 만 5년이  지났다. 한국교회가 이주민의 상황과 다문화적 사회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조금만 더 포괄적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선교적 입장과 대안들에 대하여 훨씬 다양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해 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구체적인 대안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면 첫째로,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한국사회 다문화적 변화에 대한 포괄적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개별 이주민의 상황이라도 커다란 밑그림을 두고 바라볼 때 그들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의 것을 나누고 소통하는 행동이다. 나의 것과 내 방식으로만 소통하는 것은 명령이 되거나 강요가 된다. 명령이나 강요는 두 개의 다른 힘을 가진 위계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이기에 선교의 방식으로 채택될 수 없다. 복음을 매개로한 교회와 이주민의 소통을 위해서는 상호 대등하며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의 형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을 먼저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교회의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백인과 유럽, 북미인 들에게는 인종적, 문화적 선망의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흑인, 유색인,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에 대해서는 공포 혹은 비하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교회와 자신의 모습을 먼저 발견하여 차별과 편견 없는 태도를 습득해 가야 한다. 마음을 열어 이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들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그들과 공존해 가야할 지를 배워 갈 수가 있다. 교회와 교회 주변에서 만나는 이주민은 합법체류자도, 미등록 불법체류자도, 전도대상자만도 아닌, 우리들과 같은 생명과 인격적 가치를 가진 '사람'이요, '시민'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 다문화 교육이 소수 이주민을 위한 교육만이 아니라 다수 한국시민의 교육이 되어야 하듯이 한국교회 교인들의 인식의 확장, 편견의 극복을 위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셋째로 각 교단은 다문화 선교를 위한 목회자를 양성하고 교단 정책에 관한 연구를 해 가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미 유입되고 있는 이주민들을 양육하고 돌볼 수 있는 지식과 태도가 준비된 목회자가 필요하며 이들을 위한 재교육 혹은 신학교 내의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방식, 혹은 총회 차원의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하는 방식 등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다문화, 다인종적 목회를 진행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교단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인종공동체 별로 목회자가 세워져야 하기에 이주민 목회자도 배출되어야 하고 나아가 이주민 평신도 지도자, 집사, 장로가 세워질 수 있도록 교단 헌법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다문화적, 다인종적 다양성을 교회의 아름다운 가치로 세워가야 할 선교신학적 비전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다문화주의는 인종, 성별, 계층에 따른 차별을 묵과하고 다수 시민 중심의 일방적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동화주의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문화집단, 인종집단, 종교집단 간의 단절이 구조화되어 갈 전망이다. 그러나 교회는 다양성을 차별적 요소로 수용하여 그것을 재생산해 가기보다는, 지향해야할 교회의 비전으로 내면화 할 수 있는 선교 신학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독교교육학자 러셀은 우리가 서로 알기 전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화해하시고, 우리 모두는 서로와 하나님의 파트너가 됨을 교회의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 성도 간의 평등한 관계(equal regard)와 상호 용납(mutual accep-tance)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 러셀의 이 교회에 대한 비전은 인종, 젠더, 계층적으로 다양한 성도 간의 차이들을 교회가 차별이나 갈등으로 인한 상처 없이 공동체의 가치로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 12월 18일 유엔 총회는 모든 이주민과 그들의 가족을 보호하는 국제협정을 승인하였다. 이 협정의 목적은 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이주민과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을 인정하는 것이며 공식문서를 통해 이들에게 첨가되어야 할 사회적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다.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이주가 세계화의 한 흐름이 되고 한국 사회도 현재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다인종 다문화적 사회의 변화를 그 어느 사회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이주민의 기본적 인권과 생존권을 마련하는 일조차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지 못한 채로 이주민은 지속적으로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주민의 현안문제와 다문화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절대적 대안은 있을 수 없지만 기독교 교회가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약자이며 나그네 된 이들을 환대하고 포용해 가야한다.

다문화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노력은 다양하며 개별적인 차이를 사소한 차원에서 이해하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구체적이며 관계적 삶을 연습하는 교육이자 훈련이며, 운동이다. 이주민을 잠정적 체류 노동자로만 보거나, 다문화 가정을 사회 통합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거나,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변화와 이주민의 유입을 전도와 선교적 기회로만 활용하려 한다면 이주민들은 지속적인 불안 속에서 고립과 단절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문화 사회를 위한 교회의 선교는 일방적 선포와 통합의 수준을 극복하고 서로 배려하며 존중하는, 성도로서의 삶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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