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중보적기도

평화를 위한 중보적기도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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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3일(수) 10:31

이승영/목사ㆍ새벽교회

1974년 7월 11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처벌받던 시절, 구속자 가족들과 교역자, 평신도들이 종로 5가, 2층 소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긴장으로 가슴을 졸이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

목요일인 이날의 모임을 계기로 기도모임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로 정례화 되었고, 민청학련 관련 구속자뿐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박해받고 구속된 모든 사람들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이에 대한 교회의 의견을 밝히는 중요한 모임으로 정착되어 갔다. 이 기도회는 76년 3월, 3ㆍ1 민족구국선언사건(세칭 명동사건)이 발생하면서, 하나로 통합되어 금요기도회로 바뀌었지만, 이후에 79년 유신이 붕괴될 때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금요기도회는 서서히 그 역할이 축소되어 갔다.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이후, 민주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면서 이제 목요ㆍ금요기도회는 먼 옛날의 일이 되고 말았다.

2005년 2월 4일 오후 9시, 2002년부터 매월 첫 번째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평화기도회가 이 날도 우리 새벽월드 평화센터에서 열렸다.

기쁨에 넘치는 찬양에 이어, 특별히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목사님께서 전해주시는 은혜로운 말씀과 믿음생활을 함께하는 한 성도의 귀하고 진실된 간증으로, 잔잔한 감동이 가득했던 1부 예배가 끝이 났다. 이어 1층의 크리스찬 카페 '평화'에서 커피 향과 고소한 간식 냄새가 퍼지는 가운데, 서로 받은 은혜와 감동을 나누는 짧은 휴식시간을 가진 후, 곧 나라와 민족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2부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밤이 늦도록 평화센터는 뜨거운 기도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어원으로 볼 때 '사이를 걸어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중보적기도(Intercession)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특별한 기도를 뜻한다. 여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것, 그들의 주장을 변호해 주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래서 중보적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흔히 '사랑의 기도자'라고 부른다. 사실, 한국 교회가 새벽기도, 철야기도 등을 통해 쉬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그 중보적기도의 전통이 뿌리가 되어, 목요 기도회로 이어졌던 것이고,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물론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이제는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보다는 다른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에 천착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다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정한 '사랑의 기도자'로 돌아가야 되지 않을까.

내가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 전,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이 분이 성지순례를 가셨더란다. 시내산을 오르는데 그곳은 사막지역이라 낮에는 날이 너무 더워서 산에 오를 수 없어서 이른 새벽에 산 정상에 올라갔더니, 그 어두움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중년여성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 여성이 누군가 하면, 바로 2차 대전 때 독일의 영웅이며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갖고 있던 롬멜 장군의 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의 잘못을 참회하는 뜻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기로 결심, 이들의 벗으로 지내는 중에 시내산에 들러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감동을 간직하고 있던 나는 시내산 정상에서, 그리고 백두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드렸다. 그 감동과 은혜가 이제 매월 열리는 평화기도회로 열매를 맺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중보적기도의 초점은 그리스도시다. 왜냐하면 주님이 성령과 함께 모든 인류를 위하여 중보적기도를 드리고 계시기 때문이다(롬 8:26, 34).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귀한 것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바로 중보적기도이다. 한 사람의 기도는 한 영혼, 한 지역, 한 나라를 구원한다고 하지 않는가. 존 낙스(John Knox)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다. 나를 벗어나 이웃, 교회,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모여 기도하는 순수한 평화기도회가 여러 곳에서, 자주 열렸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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