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스트

니힐리스트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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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6일(수) 17:03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알베로니(Francesco Alberoni)가 쓴 '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내용은 좀 산만한듯해도 소제목들은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들이다. 그중에 '니힐리스트'라는 글이 가장 크게 공감을 주고 있다. 니체의 정의에 의하면 니힐리스트는 허무주의자를 뜻하는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라틴어 니힐에서 유래되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원한과 증오에 차서 뭔가가 갑자기 나타났다거나 기능을 아주 잘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건강하거나 유쾌하게 승리를 했다거나 하는 모든 것에 반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니힐리스트들은 정치나 사회나 교회나 어느 곳에나 깊이 뿌리박고 있다. 니힐리스트들은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평화롭고 소위 잘 되어가면 기분이 좋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서 있는 환경이나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편안해지고 적이 누구든 그들과 의견이 통한다는 것이다. 니힐리스트들은 건설적인 제안이나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가 하면 목청을 높여서 분개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뛰어나면 날수록 가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를 공격하고 모욕을 하며 중상을 하고 만족을 느낀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리가 이루는 어떤 일, 공들여서 헌신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나 교회에 뭔가 한번 좋은 일을 해보려고 할 때 이런 니힐리스트들의 괴롭힘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의 공격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참으로 쉽지 않다. 격려와 칭찬을 받으면서 해나가기도 쉽지 않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문화나 정신세계에는 항상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존재하는데 '건설하는 사람'과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파괴하는 사람이 있어야 더욱 견고하게 건설하지 아니하겠느냐의 이론을 전개하지만 중요한 것은 격려하고 협력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회와 개인이 올바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올바른 흐름의 반대편에 서서 파괴와 분노, 독설로 인하여 비록 옳음을 결속시키고 성숙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하여도 니힐리스트는 불행하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도 자신을 니힐리스트로 자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질문을 하고 싶다. 오늘 당신은 남의 선한 노력과 성공에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격려하고 진정한 갈채를 보내고 있는가? 남의 업적과 공로에 대해 칭찬과 자랑이 많이 인색한 편은 아닌가?
 
'시작은 잘하지, 좀 더 두고 봐야지, 무슨 꼼수는 없는 거야?' 별의별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며 좀처럼 우호적이지 못할 때가 많지는 않은가. 마치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처럼 혹시 싫어하면서 닮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이 가까이 왔다.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이웃으로 존재할지언정 남을 힘겹게하고 슬프게 하고 흠집내고 망가뜨리고 아프게하는 니힐리스트가 된다면 그는 진정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김 원 주
목사ㆍ포항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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