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진리

두려움과 진리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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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1일(수) 15:26
정 훈/목사ㆍ여천교회

요즘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전염성과 죽음에 이를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고 치료약도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치명적인 질병이기에 모든 나라들에 비상이 걸려있다.

예방하는 방법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손을 깨끗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때 보다 열심히 손을 씻고 있다. 우리 교회도 손 세척제를 여러 곳에 비치해 놓았다. 물건이 동이 나서 구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성도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지극정성으로 세척제를 사용하여 손을 씻고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사실, 신종플루에 걸릴 확률은 수천분의 일이다. 발병이 되었다 해도 치료받고 살아나는 확률이 훨씬 높다. 최악의 상황으로 생명을 잃는다 해도 이 땅에서 몇 년 혹은 몇 십 년 먼저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1백% 축복을 가져온다.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지상최고의 도구이다. 영원한 삶과 죽음을 전하고 있는 창조주의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 말씀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도 매일 읽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아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성도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도 치료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몸부림이 거의 없다.

문득 생각해 본다. 영원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신종플루라는 육체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만큼도 중요성이 덜한 것인가?

믿음의 선진들은 진리의 말씀은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었는데 오늘 우리는 왜 육신의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육신의 죽음에 대한 절망이 영원한 죽음 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도덕과 윤리, 보람과 가치를 위한 이 세상의 짧은 생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신앙이 영원한 삶을 위한 진리가 되지 못하고 막연한 이 땅의 안위와 축복을 위한 종교적 산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육체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진리가 진리일 수 있겠는가? 의학도 넘어서지 못한 신학이 신학일 수 있을까? 육신에 대한 두려움은 영생을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을 가리워 버린다.

어떤 왕이 궁궐을 지을 때 한 방을 온통 거울로 장식하였다. 그 방에 들어서면 자신의 모습이 수백 명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그 왕은 즐거움을 느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그 개는 죽은 채 발견되었다. 수백 마리의 개가 자신을 향하여 달려드는 모습에 겁에 질려 죽은 것이다. 두려움은 실패나 굶주림보다 더 무서운 절망의 질병이다.

오늘도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으로 열심히 씻고 있는 우리의 손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의 손으로 바꾸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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