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자의 땅, 한국교회를 기다린다

개혁자의 땅, 한국교회를 기다린다

[ 교단 ] 총회장 해외 교회 순방 <스위스편>

김보현 기자 bhkim@pckworld.com
2009년 06월 24일(수) 14:53

   
▲ 존 녹스 센터에서 열린 '칼빈 탄생 5백주년 기념대회 개회예배'
이번 해외 순방의 마지막 방문지인 스위스 제네바는 개혁교회 전통과 한국교회와의 역사적 만남을 위해 오랜동안 많은 만남을 준비하고 기다려 온 것일까.

스위스 제네바를 거점으로 하여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이 구체화되는 데 중심점이 되었던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개혁자 존 칼빈이었다. 올해 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아 이곳 제네바에서는 칼빈과 개혁자들의 업적과 신앙적 유산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새롭게 문을 열고, 기독교강요가 새롭게 현대어로 출간되는가 하면 세계개혁교회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예배와 세미나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개혁교회의 후손인 본 교단과 한국기독교장로회 또 해외에서 사역 중인 디아스포라 교회 지도자와 학자 등이 동참했는데, 총회장 일행 도착 이전에 이미 이수영목사(새문안교회)와 정경호교수(영남신대) 임성빈교수(장신대) 등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고 금주섭 목사(WCC 선교와 전도위원회 총무)와 유경호목사(제네바한인교회) 등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총회장의 이번 해외 순방은 미국과 러시아를 거쳐 이곳 스위스를 최종 목적지로 한 것이었다. 실무적으로는 해외한인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돌아보고, 국내에서 전개했던 섬김 사역을 지구촌 차원으로 확대하고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러시아에서는 가톨릭교회보다 5백년 전 헤어졌던 정교회, 더구나 이념의 장벽 가운데 만날 기회조차 없었던 러시아정교회와 새로운 동반자적 협력 가능성도 타진할 수 있었다.

   
▲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를 통해 세계교회를 위한 새로운 희망을 준비해 온 두 지도자 김삼환총회장과 샘 코비야 WCC 총무.
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중요 과제가 바로 '뿌리와의 만남'이었다.  한국교회, 특히 한국장로교회는 주지하는대로 1백25년 전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 캐나다 등의 교회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들에 의해 심어진 복음의 씨앗에서 발아했다. 더 멀리 보면 16세기초 스스로도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고국 프랑스를 떠나 이곳 제네바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시민들의 삶을 돌아보았던 개혁자요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존 칼빈과 이곳 제네바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펼쳐졌던 고백과 삶, 가르침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방문이 한국선교 '뿌리'에 대한 고마움과 연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면 이곳 제네바에서는 장로교회의 뿌리, 개혁교회의 뿌리와의 또 다른 만남이 이뤄졌다.

더욱이 이번 만남이 소중한 것은 5세기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와 관습, 전달자의 견해와 시각에 따라 해석 등에 가리우고 퇴색됐던 바로 5백년 전 칼빈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오래된 역사와의 조우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야말로 '박물관 순례'와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자기 개혁과 부인(否認) 속에서, 동시에 5백년 전 격변하는 사회 풍조와 국제 정세 속에서 힘겹게 발아한 개혁교회의 유산이 그간 딱딱한 교리와 조직신학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칼빈의 삶과 사역의 일단을 개혁의 현장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 세계교회는 한국교회를 기다려왔고 또 기대하고 있음과 함께 개혁교회 안에 일고 있는 연합과 일치의 흐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끊임없는 개혁'의 모토를 '자기 분열'의 근거처럼 삼아왔던 개혁교회의 연대와 일치 움직임은 국내 교단의 상황을 볼 때도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였다.

제네바 방문 첫날은 미국교회가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세웠던 존 녹스 센터에서 열린 '칼빈탄생5백주년기념대회개회예배' 참석으로 시작됐다. 이에 앞서 현장에서는 내년 통합을 앞두고 있는 세계개혁교회연맹과 REC의 마지막 실행위원회도 열려 마무리 조율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 내년 통합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중인 WARC-REC 관계자들과 함께한 본교단 방문자들.
다음날 이번 방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기념강연회가 칼빈 디아스포라 난민들을 교육했던 의미있는 장소인 '칼빈 강당'에서 열렸다. 대회 중에는 단 한 번의 기념강연회가 있었는데 초청된 강사의 면모는 매우 상징적이었다. 미국장로교회 존 칼빈노회장과 함께 초청된 강사는 본 교단 총회장 김삼환목사로 이는 한국교회의 대표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나아가 비서구권 교회를 대표한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의 대표가 5백년 만에 열리는 기념행사에 초청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의미 있었으나 '한국교회 내 칼빈의 유산'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에큐메니칼 십일조'와 같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개혁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을 향해 던져준 새로운 방향으로 인한 충격은 더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적인 기념대회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상 피에르교회에서 열린 기념예배를 통해 마무리됐다. 종교개혁 당시 칼빈이 목회했던 현장에서 열린 예배 실황은 전 유럽으로 생중계될 만큼 많은 정성과 노력을 통해 준비되고 의미있는 순서들로 진행됐다. 그러나 정작 시선을 회중석으로 돌려보니 좌우 좌석 가운데는 드문드문 빈 곳도 눈에 띄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도 대부분 중년 이상의 모습들이었다. 활기찬 강단과 다양한 프로그램,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이런 모습들이 오버랩되면서 마음 속에서는 과연 종교개혁 5백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가 새로운 도약이나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노쇠한 서구교회가 힘겹게 마련한 마지막 만찬 자리로 기록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감함마저 밀려왔다.

이곳에서 김삼환총회장은 샘 코비야 세계교회협의회 총무와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를 통해 세계교회를 위한 새로운 희망을 준비해 온 두 지도자는 이번 만남을 통해 보다 깊어진 우정과 구체화된 다양한 주제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WARC 지도부를 초청한 만찬에서는 한국교회의 헌신과 열정을 보여주며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그려가고 있는 '세계교회 경영'이 우리만의 비전이 아니었음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두 주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며 계속된 미국 캐나다 러시아 스위스 방문, 그리고 현장에서 이뤄진 디아스포라교회와 해외 동역교회, 정교회,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 그리고 무엇보다 선교와 개혁의 뿌리를 찾아보았던 만남을 통해 한국교회는 역사 앞에 더욱 겸손해야 함과 끊임없는 자기 개혁의 필요성,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의 큰 수레바퀴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김보현 bhkim@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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