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땅에서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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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 총회장 해외 교회 순방 <러시아편>

김보현 기자 bhkim@pckworld.com
2009년 06월 17일(수) 13:48
   
▲ 새롭게 재건된 구세주교회(작은 사진)는 공산 치하 정교회가 겪었던 박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세르게에프 파사드의 본부와 함께 정교회를 상징하는 교회다. 큰 사진은 구세주교회에서 내려다본 모스크바 강가의 크렘린궁.

총회장의 러시아 방문은 러시아정교회 관계자들과 양 교단간 공식 회동을 위한 것으로 세계교회와의 관계 확대와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유치 등 에큐메니칼 현안 차원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연방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만큼이나 원유 등 엄청난 부존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 최근 신흥 부자들에 보도도 심심치않게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시내의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운 외제 고급 승용차와 그 사이를 다니는 낡은 소형차들의 끝없는 행렬로 인한 정체는 경제 격변기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도심에 들어서자 광장과 유서깊은 건물들과 함께 대형 옥탑광고판에 국내 기업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 교통량 최대라는 교량의 이름마저 바꿔놓았다는 또 다른 국내 기업의 광고현수막은 반가움 그 자체였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날 일행은 러시아 정교회 대외협력부를 방문했다. 총괄책임자인 이고르 비자노프주교를 비롯해 각 분야의 대외 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실무자들과 WCC와 개신교 등과의 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40년 경력의 실무자와 함께 회동했다.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열린 홀리시노드 주관차 모스크바를 떠난 관계로 키릴 총대주교와 기대했던 회동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날 첫 만남과 다음날 계속된 비공식 접촉은 양 교회간 새로운 관계의 전환점이 될만한 의미있는 대화로 진행됐다. 그 동안 본 교단을 포함한 한국교회는 정교회, 특별히 러시아정교회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했다. 이는 이념적 장벽 때문만 아니라, 공산치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를 오히려 정권과 일정 부분 동일시하며 폄하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 정교회 대외협력부 총괄주교 등 관계자들에게 에큐메니칼 기념 스톨을 전해준 후 이들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중앙에 비자노프 총괄주교와 김 총회장 내외, 그 옆으로 조성기사무총장, 박성원목사.
실무자들 간에 대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한국교회가 WCC와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불신의 또 다른 모습이 이곳 러시아정교회 내에 있음을 알게 됐다. 동서냉전 체제 하에서 WCC가 사회주의국가 교회들의 회원권을 인정하자 우리 나라 보수교단들은 WCC를 '용공'이라고 매도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 러시아정교회는 WCC 회원교회 가운데 일부가 동성애 허용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두고 WCC와 에큐메니칼운동이 급진적이고 순수성을 상실한 기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해외에서 한국교회 대표들과의 접촉에서도 동성애를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접하면서 '한국교회 역시 동성애 문제에 우호적(?)인 교회'라는 오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오해와 편견의 장벽을 거둬내고 나자 대화는 세계에큐메니칼운동의 현안과 비전으로 발전되었고, 이를 위해 추진 중인 한국교회의 다각적인 노력과 진정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만남을 마치며 비자노프주교는 "이 문을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대화를 마친 지금) 양자 관계의 증진과 교류를 통해 얻을 유익이 상호 많다는 데 대해 보다 큰 확신을 갖게 됐다"면서 "WCC와 같은 큰 기구 내에서는 물론이고 양 교회가 보다 가까운 관계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응답,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가감없이 드러내보였다.

오후에는 러시아 정교회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구세주성당(Christ Savior Cathedral)과 모스크바장신대를 방문했다. 주후 988년 블라디미르왕자의 개종으로 정교회가 국교로 선포된 뒤 1천년 이상의 역사가 흘러오면서 러시아정교회는 외세 침략과 혁명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바로 구세주성당은 공산치하 대표적으로 고난을 겪었던 현장. 크렘린궁 인근에 세워져 있던 교회를 파괴한 공산정권은 초대형 레닌상을 세우려고 추진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고 결국 한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귀족들을 위한 수영장 시설로 개조되었다가 개방 이후 복원이 이뤄져 과거 위용을 회복하게 됐다.

   
▲ 짧은 러시아 방문 일정 중에도 김삼환총회장은 모스크바 장신대를 방문해 손승원총장과 이흥래이사장을 만나 장학금을 전달했다.
저녁 식사후에는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모스크바장신을 방문하게 됐다. 늦은 시간에 방문한 관계로 발전계획와 선교 열매 등에 대해 준비한 동영상과 간략한 안내를 받은 뒤 함께 기도하고 자리를 마쳐야 했다. 이국 땅에서 현지 목회자를 양성해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 열매를 거둬가고 있는 신학교 사역을 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땀흘리고 있는 원로들. 간단한 도로 보수공사조차 까다로운 절차와 허가가 필요한 사회 현실이 교차되며 희망과 열정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사역의 어려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 일정 마지막날에는 정교회 관계자들의 제안에 따라 정교회 본부와 신학교 등이 위치해 있는 세르기에프 파사드를 방문했다. 모스크바 동쪽으로 70㎞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타타르족과의 전쟁을 치를 당시 전선이 위치해 있던 곳. 이곳 수도원은 방어성의 역할을 했었고 지금도 러시아정교회의 정신적 고향이고 본산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 세르게이성인에 의해 수도원이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7개의 교회 건물과 함께 방어탑 등이 구축되었고 지난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입구에서부터 성인의 행적을 보여주는 성화들이 방문자를 맞았고 삼위일체성당, 성령강림성당, 세례요한성당 등을 방문한 이들은 안치된 성인들과 높다란 벽면 가득히 자작나무 판자 위에 그려진 성화를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화에나 나올듯한 아름다운 교회 외관과 경건한 모습으로 성인들을 참배하고 마당 한 가운데 세워진 샘물에서는 물을 긷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로 치면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타종교의 종교시설을 방문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오늘날 한국기업들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자국기업으로 취급받으며 자리잡고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널리 알려진 비화가 있다. 한국에도 유명한 볼쇼이극장이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후원을 끊었으나 국내 모 기업은 변함없는 지원을 이어갔고 그것이 오늘날 경제회복 이후 동 극장은 물론 이곳 국민들에게 한국기업이 의리있는 기업으로 인정과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짧은 모스크바 방문 일정이었지만 원색의 양파모양 교회 지붕과 들판 가득했던 노란 민들레꽃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천년 베일 속 러시아정교회와의 따뜻한 만남, 새로운 선교적 협력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어쩌면 교회가 역사와 기업을 통해 배워야 할 모습은 아닐까.  김보현 bhkim@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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