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변화의 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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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에서온편지 ] < 7 > 러시아인, 이 시대의 유목민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16일(목) 09:28
   
▲ 정치,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는 러시아 정세와 마찬가지로 선교현장에서도 복음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12차 CIS 한인선교사대회.

러시아는 사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로이다. 레너드 스윗목사의 "동양과 서양의 균형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라는 통의 시대…"가 인상적이다.

연해주에서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ㆍAsia Pacific Economic Council) 정상회의 준비가 있을 예정이고,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 핫산을 잇는 철도노선 소식도 들려온다.

16년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사역지를 옮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싱가포르 타문화권 선교훈련원(ACTI) 과정을 마치고 중국 선교사의 비전을 품으며 관련 절차를 밟고 있었다. 미국 시카고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던 중 결국 시카고를 거쳐 멀리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보내심을 받았다. 그러기에 연해주와 중국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에게는 특별한 애정과 존경이 간다. 연해주 지역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세워져 복음의 뿌리를 내렸고 연합사역을 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6년 1월 말, 러시아 선교 초창기에 가깝게 지내는 선교사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6박7일간 횡단하는 대륙횡단 열차를 탄 적이 있다. 러시아 선교사로서 대륙을 품으려면 한번쯤은 타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때 시베리아, 하바로브스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선교사들과는 지금까지도 믿음과 우정을 나누며 러시아 선교사들 연합 모임을 구성해 든든한 믿음의 동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CIS(구소련) 한인 선교사들이 각 지역에서 번갈아가며 서로를 초대해 각자의 고민과 사역 상황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러시아 여러 지역을 탐방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특히 사할린은 한민족의 서러움이 담긴, 러시아 선교의 못자리요 역사적인 선교현장이다. 대한항공 추락 사건과 함께 수많은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 땅이다. 그 열악한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자립해가고 있는 주의 종들의 모습도 보았다. 한편 사할린은 연어와 꽃게는 물론 원유,석탄, 나무 등 자원이 풍부한 보물섬이기도 하다. 마치 흑암 중의 보화처럼.

한편 상트 페테르부르크 라브리수도원 옆 묘원에는 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학,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기도 하다.

우리집 아파트 11층 창문 너머 아스팔트 거리에 '나타샤, 야 찌뱌 실로 류불류!!'(나타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라는 글귀가 크게 써 있던 적이 있다. 처량하나 대담한 러시아 젊은이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한 마음과 함께 낭만이 느껴진다. 꽃을 사랑하는 나라, 강아지와 가로수 길을 거닐며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비록 굶주림과 배고픔의 고통도 있지만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러시아인들이다.

이와 관련 몇년 전 열린 어느 세미나에서 정교회 소속 베냐민 신부는 "러시아인은 유목민 기질이 있다. 한곳이 더러워져도 땅이 너무 넓어서 그냥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모성사회의 영향력,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예술에는 탁월하다"는 내용의 발제를 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 작가 고골(Nikolai Vasil evich Gogol)의 탄생 2백주년을 맞이해 보도된 신문 기사에서 고골이 어느 나라 사람 이냐는 논쟁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간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글은 러시아에서 썼고, 죽을 때는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저마다 생각하는 정신적인 영웅이 자신의 나라의 정서를 지니고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얼마전부터 이곳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즉 러시아의 정신 및 영혼의 흐름과 시장경제나 민주주의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동안도 소위 반정부 지도자들이나 언론, 방송, 각계 지식인 중에 슬그머니 사라지거나 처형 당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한다.

러시아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어떻게 살아 남느냐이다. 1백년 동안 정치, 경제의 울타리가 두차례나 붕괴되는 경험을 가졌기에 생존에 대한 이들의 경각심과 몸부림은 처절하다. 1917년 공산주의로 제정 러시아가 막을 내렸고, 1991년 구소련이 무너졌고, 지금은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 선교도 신학교육이나 교회도 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혹한의 땅에서, 영적 목마름에 허덕이는 이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러시아 곳곳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헌신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의 러시아 장로교를 세워가는 운동과 러시아 목회자들간의 초교파 복음주의 연합모임들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바라건데 러시아 안에서의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 복음의 지평이 확대되어가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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