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프리칭]<15>백향목으로 지어지는 설교

[내러티브프리칭]<15>백향목으로 지어지는 설교

[ 연재 ]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8년 04월 29일(화) 00:00

이연길목사

이야기식 설교에는 갖추어야 할 중요한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내용(contents), 2)움직임 또는 발전 과정(moving or develop), 3)방향(direction), 그리고 4) 플롯(plot)입니다.

음식 맛의 생명은 재료

많은 분들이 이야기 설교는 아무 이야기나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설교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설교는 비빔밥이나 짬뽕식 설교라고 해야될 것입니다. 비빔밥이나 짬뽕은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설교에서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설교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청중에게 복음을 남겨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설교 중에서 자기 구미에 맞는 어떤 특정한 내용이나 예화만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설교는 옛날 솔로몬 성전을 백향목으로 지었듯이 성경 내용이 설교 중심이 되어야하고, 설교를 듣고 난 후에는 복음이 청중들에게 남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이야기 설교 학자들 대부분은 이야기 설교의 내용은 성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잇잭 펄먼(Yitzak Perlman)의 연주는 단지 그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을 숙련된 기술로 재생하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놀랍게도 그 악보의 영혼과 에너지(그것의 생명)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전달한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악보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일점일획'도 덧붙이지 않는다. 음악과 성의 관계에 대한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는 그가, 모차르트가 스스로를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모차르트를 잘 이해한다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는 억제한다. 아무렇게나 음을 삽입해 넣지 않는다. 텍스트에 성실하게 집중한다고 해서 노예처럼 개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집중은 예술가의 연주를 통해서 텍스트에 내재한 것을 해방시킨다. '음악은 해석과 연주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본문과 씨름하는 고뇌 필요

이런 정교하고 소중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설교자는 성경 본문과 깊고도 오랜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성경은 속내를 결코 쉽게 내보이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속적으로 강조합니다만 성경의 겉 스토리만을 읽어내면 사람 냄새가 많이 납니다. 그 속내를 읽어낼 때 그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유진 라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자가 연구하는 일에 씨름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강단에서 결론들만 단순하게 언급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에 감동을 받지도 못하고 또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청중을 설교 과정 자체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은 청중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The Homilectical Plot, 84)."

칼 바르트는 "설교자는 마땅히 설교 본문과 함께 고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 본문과 씨름하고 고뇌하는 만큼 설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본문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룰 것인가 하는 실례는 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월간 목회에서 '선으로 풀어가는 성경해석'이란 연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설교는 복음 전달이 주안점

이야기 설교에서는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성경이야기들을 많이 했다고 해서 이야기 설교라거나 성경적 설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새롭게 복음의 말씀들을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로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면해야 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삶들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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