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 남편: 베트남 출신 부인에게 떡국 끓이기 전수, 아내: 친척 모이는 자리 실수없게 설 예행 연습
부인 마이란 씨에게 떡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는 남편 박기중 씨. | ||
"그 다음에는요?"
"파와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돼. 기호에 따라서 만두를 넣거나 계란을 풀기도 하지. 고기를 미리 끓여서 국물을 만든 뒤 떡을 넣어서 만들기도 해."
"어렵지 않네요. 금방 배울 수 있겠다. 기다려요. 내가 이번 설에는 당신과 진희에게 사랑을 듬뿍 담은 특별 떡국을 만들어 줄게요~."
지난 1월 27일. 인천 남구 도화3동의 한 아파트에서 보글보글 떡국이 끓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대화소리가 문 틈새로 흘러나왔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마이란 씨가 오는 7일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설을 앞두고 남편 박기중 씨에게 명절요리를 배우고 있었던 것. 이날의 메뉴는 설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음식인 떡국. 이번 설에는 꼭 자신이 손수 만든 떡국을 가족들에게 선보일 참이란다. "먹어보니 맛있어요.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네요." 떡국 만들기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옆에 있던 딸 진희(3세)가 더 먹겠다며 '엄마'를 채근했다.
마이란 씨는 이주노동자 방송 MWTV의 앵커다. 그녀는 매주 월요일 MWTV 뉴스를 통해 신속한 정보를 전달하며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 주고 있다. 또한 평소에는 인천 외국인노동자센터(소장:박경서)의 노동상담팀 간사로 근무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상담 및 통역하면서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준다.
활발한 활동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빠 보이는 그녀가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함께 명절 음식 만들기에 열중이다. 그러한 아내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음식을 먹은 후에는 남편 박 씨가 아내를 위해 전통놀이 전수에 나섰다. 지난 달력을 찢은 종이 위에 사인펜으로 윷판을 쓱쓱 그리더니 담요를 깔고 윷놀이를 시작한다. 박 씨가 '으랏차차' 우렁찬 함성과 함께 윷을 높이 던지며 시범을 보이니 호기심이 발동한 진희가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다. 딸의 모습을 보던 부부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번지자 방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맴돌았다.
집 근처 화도진공원으로 고운 설빔을 차려입고 산책을 나선 박기중 마이란 씨 부부. | ||
지난 2003년 7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두 사람은 편지와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 박기중 씨는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마이란 씨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한 끝에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박 씨는 "아내에게 내가 마음에 들면 결혼을 승낙하고 아니면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다행히 허락해 줘서 지금 이렇게 딸 진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단아한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착실한 성품이 더 끌렸어요.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때도 제 아내와 결혼할 거예요." 마이란 씨와 결혼하기 위해 박 씨는 당시 베트남에서 45일간을 체류했다. 자리를 오래 비운 탓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과장에서 일반 사원으로 직급을 강등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씨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단다. 박 씨에게는 마이란 씨가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남편을 실제로 봤을 땐 느낌이 참 좋았어요. 착하고 좋은 사람 같았죠. 함께 지내보니 이렇게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요. 항상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거든요." 마이란 씨도 남편 자랑 일색이다. 통역을 해주기 위해 베트남에서 온 남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병원이나 노동부를 찾는 일이 더러 있는데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이해해줬다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지내기 힘든 점은 없냐고 물으니 마이란 씨는 "베트남도 한국처럼 음력 1월 1일을 설로 지내기 때문에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특히 더 보고싶다"면서 "타국의 외로움이 힘들지만 이제는 가족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아내가 가족들의 품을 떠나 먼 곳으로 온 것이 늘 미안하다"고 했다.
박 씨 부부에게 새해 소망을 물으니 두 사람 다 첫 번째로 가족의 건강을 꼽았다. "남편과 아기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남편이 자주 이가 아프다고 하는 데 빨리 낳길 바래요. 진희도 아픈 데 없이 잘 자라줬으면 하고요. 저는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어요." 마이란 씨에게는 이외에도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경제와 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싶거든요. 법을 배우고 싶은 것도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은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노동법 등을 자세히 알아서 그들을 더욱 잘 도와주기 위해서죠." 이러한 아내가 자랑스럽다는 박 씨가 마이란 씨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가족은 공원을 한바퀴 돌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박 씨의 가족 너머로 빠알간 석양이 지며 이들의 가는 길을 은은하게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