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문화가정의 고유명절 '설' 지내기

[ 교계 ] 남편: 베트남 출신 부인에게 떡국 끓이기 전수, 아내: 친척 모이는 자리 실수없게 설 예행 연습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1월 31일(목) 00:00

   
 
부인 마이란 씨에게 떡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는 남편 박기중 씨.
 
【인천=정보미】 "냄비에 물을 3분의 1정도 붓고 끓인 다음 불린 떡을 넣는 거야."
 "그 다음에는요?"
 "파와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돼. 기호에 따라서 만두를 넣거나 계란을 풀기도 하지. 고기를 미리 끓여서 국물을 만든 뒤 떡을 넣어서 만들기도 해."
 "어렵지 않네요. 금방 배울 수 있겠다. 기다려요. 내가 이번 설에는 당신과 진희에게 사랑을 듬뿍 담은 특별 떡국을 만들어 줄게요~."

지난 1월 27일. 인천 남구 도화3동의 한 아파트에서 보글보글 떡국이 끓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대화소리가 문 틈새로 흘러나왔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마이란 씨가 오는 7일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설을 앞두고 남편 박기중 씨에게 명절요리를 배우고 있었던 것. 이날의 메뉴는 설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음식인 떡국. 이번 설에는 꼭 자신이 손수 만든 떡국을 가족들에게 선보일 참이란다. "먹어보니 맛있어요.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네요." 떡국 만들기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옆에 있던 딸 진희(3세)가 더 먹겠다며 '엄마'를 채근했다.

마이란 씨는 이주노동자 방송 MWTV의 앵커다. 그녀는 매주 월요일 MWTV 뉴스를 통해 신속한 정보를 전달하며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 주고 있다. 또한 평소에는 인천 외국인노동자센터(소장:박경서)의 노동상담팀 간사로 근무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상담 및 통역하면서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준다.

활발한 활동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빠 보이는 그녀가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함께 명절 음식 만들기에 열중이다. 그러한 아내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음식을 먹은 후에는 남편 박 씨가 아내를 위해 전통놀이 전수에 나섰다. 지난 달력을 찢은 종이 위에 사인펜으로 윷판을 쓱쓱 그리더니 담요를 깔고 윷놀이를 시작한다. 박 씨가 '으랏차차' 우렁찬 함성과 함께 윷을 높이 던지며 시범을 보이니 호기심이 발동한 진희가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다. 딸의 모습을 보던 부부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번지자 방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맴돌았다.

   
 
집 근처 화도진공원으로 고운 설빔을 차려입고 산책을 나선 박기중 마이란 씨 부부.
 
윷놀이가 한바탕 끝나자 이번에는 마이란 씨가 장롱 속에 깊숙이 보관해 뒀던 한복을 꺼냈다. 고름 매는 연습도 해볼 겸 내친김에 한복을 입고 집 근처 화도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다. 마이란 씨의 저고리 고름을 매는 손길이 능숙하다. 딸 진희에게도 새로 장만한 설빔을 꺼내 입혀주고 남편에게도 입을 것을 재촉한 뒤 세 가족은 손을 맞잡고 나들이에 나섰다. "명절맞이 예행연습이에요. 명절이 되면 시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나러 큰집인 강원도 원주로 가거든요. 명절음식을 만들 줄 몰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젠 가족들이 떡국을 먹고 싶어 할 때면 언제든지 만들어 줄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설에는 윷놀이에서도 꼭 이겨볼래요."

지난 2003년 7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두 사람은 편지와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 박기중 씨는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마이란 씨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한 끝에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박 씨는 "아내에게 내가 마음에 들면 결혼을 승낙하고 아니면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다행히 허락해 줘서 지금 이렇게 딸 진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단아한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착실한 성품이 더 끌렸어요.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때도 제 아내와 결혼할 거예요." 마이란 씨와 결혼하기 위해 박 씨는 당시 베트남에서 45일간을 체류했다. 자리를 오래 비운 탓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과장에서 일반 사원으로 직급을 강등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씨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단다. 박 씨에게는 마이란 씨가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남편을 실제로 봤을 땐 느낌이 참 좋았어요. 착하고 좋은 사람 같았죠. 함께 지내보니 이렇게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요. 항상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거든요." 마이란 씨도 남편 자랑 일색이다. 통역을 해주기 위해 베트남에서 온 남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병원이나 노동부를 찾는 일이 더러 있는데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이해해줬다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지내기 힘든 점은 없냐고 물으니 마이란 씨는 "베트남도 한국처럼 음력 1월 1일을 설로 지내기 때문에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특히 더 보고싶다"면서 "타국의 외로움이 힘들지만 이제는 가족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아내가 가족들의 품을 떠나 먼 곳으로 온 것이 늘 미안하다"고 했다.

박 씨 부부에게 새해 소망을 물으니 두 사람 다 첫 번째로 가족의 건강을 꼽았다. "남편과 아기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남편이 자주 이가 아프다고 하는 데 빨리 낳길 바래요. 진희도 아픈 데 없이 잘 자라줬으면 하고요. 저는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어요." 마이란 씨에게는 이외에도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경제와 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싶거든요. 법을 배우고 싶은 것도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은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노동법 등을 자세히 알아서 그들을 더욱 잘 도와주기 위해서죠." 이러한 아내가 자랑스럽다는 박 씨가 마이란 씨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가족은 공원을 한바퀴 돌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박 씨의 가족 너머로 빠알간 석양이 지며 이들의 가는 길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