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독서의 계절

[데스크칼럼] 독서의 계절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10월 19일(금) 00:00

데스크에 있다 보니 취재할 일도, 기사 쓸 일도 거의 없습니다. 고작 일주일에 한번 쓰는 칼럼이 때로는 엄청난 구속으로까지 여겨집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고 하던가요? 사용하면 할수록 진화하고 실력이 늘고, 사용하지 않으면 자꾸 퇴행하게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놀고 먹는 것은 아닌데, 분명 원고량은 현장에서 뛰는 기자시절보다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만에 사무실에서 다 쓰지 못한 원고를 집까지 싸들고 왔습니다. 새벽녘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도 원고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입니다. '~했다.' '~였다.''그러나~' '또한~' 등 구태의연하고 궁색한 단어가 반복되며 지지부진한 상태로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문득 글쓰기를 멈춘 채 고개를 돌려 책꽂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국립대 학장으로 정년퇴직하신 장인께서 평생 소장하신 책을 학교에 기증하시고 빈 책꽂이를 제게 주셔서 저는 아주 손쉽게 서재를 꾸밀 수가 있었습니다. 수 십 년된 책꽂이로 3면이 둘러싸여 있어서 서재에선 꽤 은은한 고서향(古書香)이 납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버릇 한가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을 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역본의 성경책을 비롯하여 주석 및 사전류의 전집과 10여년 신학공부하며 구입한 원서들이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옆면에는 에바 일루즈의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생애'와 피터 슈워츠의 '미래를 읽는 기술', 노암 촘스키의 '여론 조작' '기자가 말하는 기자'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등 미디어 관련 신간들이 듬성듬성 꼽혀 있습니다. 관심이 있어서 샀지만 목차 읽고 몇 부분 읽다가 그냥 먼지만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가 하면 곽재구 시인의 '포구 기행'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글쓰기의 유혹'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은 작가가 풍기는 여유로움이 좋아 항상 손길이 가는, 소위 '로얄 라인'에 꼽혀 있습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문학기행' 등도 감성이 퍽퍽해질 때 자주 꺼내 보기에 눈에 잘 띄는 곳에 둡니다. 

그 외에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 이성복 시인이나 황지우, 전혜린 그리고 대학시절 같은 문학 수업을 들었지만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집들, 대학시절 10개월 할부로 산 창작과 비평 영인본 전집 등이 또다른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책꽂이에 꼽힌 순서대로 제목을 읽다 보니 천장과 맞닿은 맨 위쪽칸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안나 카레리나, 테스, 스탕달의 적과 흑, 톨스토이의 부활, 오 헨리, 헤밍웨이, 에드가 알란 포 같은 세계문학전집과 대문호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책꽂이 옆에는 어쩌다 빼보고는 제자리에 꽂아두지 않은 로트랙과 고흐의 화집,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루이제 린저, 에리히 프롬, 무라카미 하루키가 누워있었습니다. 책꽂이를 보고 있자니 대학졸업 후 20년을 훌쩍 넘긴 제 나이가 보이고 가을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가장 좋은 책은 역시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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