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도사에게 배운다

[데스크 칼럼] 수도사에게 배운다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09월 27일(목) 00:00
10여 년 넘게 교계 언론에 종사하다가 2년 전 교회를 개척한 대학 후배가 있습니다. 감리교 목사였던 그는 교단 소속 없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그는 '자립 목회'를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목회자의 생계를 교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천막 제조자(tent-maker)였던 사도 바울처럼 스스로 노동을 해서 먹고 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40대 중반에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를 시작한 이후로 이런 저런 직업들을 전전하며 생계의 방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그의 생계용 직업 찾기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척 이후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은 불과 한 달도 안돼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다음 직장은 토요일 밤 12시가 넘어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답니다. 토요일 저녁이면 설교준비를 마쳐야 하는 시간인데, 그 회사는 계속 일을 시켜 목회를 병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직장은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학습지 교사를 하는 곳이라 역시 목회와 병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설교 준비 시간조차 없었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립 목회'는 목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공허한 원칙으로 남게 됐습니다.
 
그가 2년의 세월을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상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양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 '목사는 본질적으로 거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자립 목회'를 외쳤지만, 그것이 엄청난 교만임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할 곳이 없음을 깨달았고 돈을 벌면서 목회하겠다는 생각은 만용이고, 착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일한 목회의 길은 거지의 삶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열리는 것이라 고백했습니다.
 
'목사는 거지'라는 수도사적 선언만이 목회의 길이라는 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수도사들이 걸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재물의 풍요로움을 몰랐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수도사들이 본래 재력이 풍부했던 재산가나 귀족, 기사의 신분이었임을 고려할 때, 그들은 분명 재물의 힘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재물이 경건한 수도생활에 장해임을 깊이 깨달았고, 그래서 스스로 거지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얼마 전 창립 2주년 예배를 드린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척 원칙인 '자립 목회'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수도사들이 구걸하는 삶과 아울러 노동의 삶을 병행해서 살아갔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자고함이나 교만한 마음으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할 곳도 없고, 살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구걸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 속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