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오리, 그들의 사랑

[산방일기] 오리, 그들의 사랑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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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04일(화) 00:00
   
내 산방 이웃에 동생네가 산다. 모두 개울가에 살기에 두 집 다 지리(地利)를 살려 물오리를 기른다. 나는 여남은 마리지만 동생네는 더 많이 기른다. 우리 녀석들은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개울가 둔덕에 내가 애써 지어준 집에는 한 번도 들어가 자 본적이 없다.

내 집의 암오리는 순백색 '베이징 덕'으로 열 마리 안 팎이다. 수오리는 청둥오리인데 머리와 목의 색깔이 아름답다. 내가 붙여 준 이름, '청동1'이와 '청동2'의 두 마리다. 두 마리라서 수컷끼리의 주도권 싸움이 심하다. 반대로 동생네는 많은 암오리에 수컷이 세 마리 뿐이라서 내 집의 '청동2'를 동생네 오리 무리에 데릴사위로 보냈다. 당연히 기왕에 있던 수놈들이 굴러들어온 '청동2'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먹을 때에도, '청동2'가 암컷 가까이 있기만 해도 터주 수오리 세 마리가 번갈아 훼방을 놓았다. 암오리들도 새로 들어 온 수오리를 반기지 않았다.

'청동2'는 맞붙어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주눅이 들어버렸다. 반지르르 기름이 흐르던 깃도 부스스해지고, 몸 부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상 그곳 오리들을 피해 구석진 자리에 숨다시피 기를 펴지 못하고 지냈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암오리 중에서 한 마리가 신참 수오리, '청동2'를 따랐다. 두 마리 오리는 한 켤레처럼 붙어 다녔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 그 말은 오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 암오리를 '집신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른다.

이상기후라던가 올 여름은 집중호우가 많았다. 지난 7월 초순, 장대비가 1~2시간 내리더니 별안간 불어난 개울물에 우리 집 암 오리 두 마리와 '청동1'이까지 세 마리가 급물살에 휘말리어 떠내려갔다. 하류(下流)를 뒤져보니 암 오리 두 마리는 기슭으로 기어올라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물살이 가라앉기까지 닷새를 버텨서 건져왔으나 '청동1'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시일이 흐르자 어리던 암 오리들이 성숙하며 수컷 그리움인지 동성(同姓)끼리 성행위를 흉내 낸다. 생각 끝에 동생네에게 준 '청동2'를 되돌려받기로 했다. 동생은 그 수오리를 가져왔다.

어릴 적부터 제가 자란 개울 웅덩이요, 같이 자란 암오리들이 있고, 수오리는 이제 저 혼자다. 좋아라할 줄 알았는데 물에 넣자마자 이 녀석은 그 오리천국을 박차고 개울을 건너 산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식구들은 걱정이 돼서 숲을 뒤져본다는 것을 "그냥 둬, 내려 올 거야!"고 만류했다. 제가 자란 낯익은 곳이니 곧 덤불에서 나올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었다. 녀석은 날이 저물어도, 밤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고 이틀이 지났다. 식구들은 신발을 든든히 신고 숲으로 들어갔다.

다래, 칡넝쿨이 엉기고 청머루줄기에 앞이 막힌다. 첩첩한 관목 숲을 헤치고 10m를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30분 가량을 뒤지다가 단념하고 나왔다. 녀석은 벌써 포식자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앞산에는 오소리 한 가족 살고 있는 것을 알고, 너구리도 있다. "불쌍한 것! 이 좋은 곳을 마다하다니"하고 살아있기를 단념 했다.

만 이틀이 지난 저녁녘에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동2'가 나타났다고 한다. 거친 물살의 개울을 건너와서는 수오리 특유의 쉰 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리집 울타리를 향해 오더라고 한다. 동생이 오리장 문을 열어 주는데 다리 사이로 안에 있던 한 마리 암오리가 달려 나와 '청동2'에게로 다가가서는 주둥이와 목 언저리를 부비며 서로 애무를 한다. '집신이'였다. '청동2'는 키도 작은 것이 어떻게 방향을 찾았을까, 산길을 헤매며 오는 동안 깃털이 빠져서 목에 맨살이 드러나고, 날개 죽지의 큰 깃도 많이 빠졌다. 두 발의 물갈퀴는 가시에 찔려 구멍이 나고 피가 낭자하다.

사랑이 무엇인가. 오리천국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두고 온 짝을 잊을 수가 없었나보다. 오직 '집신이'를 만나려는 일심으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위태롭고 험한 산길을 헤매며 온 것이다. 지금도 꼭 붙어 다니는 '청동2'와 '집신이'를 보노라면 가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마음에 깔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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