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흐르는 강물처럼

데스크 칼럼 / 흐르는 강물처럼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08월 27일(월) 00:00
지난 주간 홍천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름휴가를 갈 수 없을 만큼 분주한 일상, 특히 데스크 업무를 보며 책상에만 앉아있다 보니 서울을 벗어난 것도 참 오랫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는 길은 회사 차량을 이용해 편안히 갔는데 올 때는 일정이 바뀌어 차편이 없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장지에서 홍천읍까지 오는 차편을 얻어탄 뒤 홍천 터미널에서 상봉 터미널로 오는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직행버스라고 했는데 실상은 마을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외버스였습니다.

평소 국도를 이용했던 저로선 다녀보지 않은 지선도로로 쉬엄 쉬엄가는 버스여행이 신선했습니다. 아마도 '휴가 못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는 시커멓고 깊게 주름이 패인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태웠습니다. 마침 장날이었는지 양 손엔 손주들에게 줄 장난감과 간식거리들을 가득 들고서….

막걸리라도 한 되 하셨는지 왁자지껄한 할아버지들의 정겨운 대화를 뒤로 한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난다는 양수리(兩水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양수리라는 지명보다는 두개의 강(물)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라는 아름다운 우리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문득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수였던 노먼 맥클레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죠. 1900년대 초반 미국 서북부 몬타나를 배경으로 실존했던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와 두 아들(노먼과 폴)의 이야기가 강물을 따라 낚시대를 드리우는 세 부자의 교감을 통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고로 먼저 죽은 작은 아들 폴의 장례식에서 아버지가 한 마지막 설교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가족들 간에 이단아처럼 살았던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 영화의 엔딩 씬은 흐르는 강물 위에서 노인이 된 노먼의 독백으로 끝납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녹아든다. 그리고 그것은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유하씨가 쓴 같은 제목의 시 중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친구여, 그대가 혼자 걸었던 날의 흐르는 강물을 부디 잊지 말길 바라네. 서로를 주장하지도 다투지도 않으면서, 마침내 수많은 낯선 만남들이 한몸으로 녹아드는 강물처럼 그대도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스며드는 곳에서 삶의 심연을 얻을 거라 믿고 있네. 그렇게 한 인생의 바다에 당도하리라 나는 믿고 있네."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관계를 감성적인 언어를 통해 흐르는 강물로 형상화 했습니다.
잠시 서울을 벗어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하고 바쁜 일상 속에 지쳤던 마음이 여유를 찾게된 것은 실로 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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