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서울 메트로

[산방일기] 서울 메트로

[ 산방일기 ] 장돈식 산방일기(128)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08월 22일(수) 00:00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했다. 시골에서는 못 듣던 말, '서울메트로'가 서울의 중심을 달리는 지하철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시골사람임을 새삼 느꼈다. 돌아와서 백과사전을 들춰보니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함으로써 시민의 복리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된 공기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5년에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에서 '서울메트로'로 사명(社名)을 바꿨다고 한다.

왜 굳이 '서울메트로'로 바꾸어야 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국제화시대라서 외국인을 위한 배려였을까, 백과사전의 표현대로 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것이라면 시민이 잘 알 수 있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동경, 긴자(銀座)를 달리는 지하철 이름이 '도쿄메트로'라니 굳이 일본의 흉내를 내야 했을까. 나는 대단한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메트로'라는 말부터가 거부감을 갖게 한다. '메트로'는 독일 쾰른의 한 판매회사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 서울에도 목걸이 귀걸이 등 장신구 판매상으로 이름난 '메트로시티'가 있고, 남성미와 여성 취향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의 도시 남성을 '메트로섹슈얼(metro sexual)'이라고 하니 지하철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너스빌, ○○스윗닷홈 등은 더러 보는 아파트의 이름이다. 시부모가 찾아오기 어렵도록 아파트의 이름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다는 항간의 우스갯소리가 어쩐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아들, 손자 사랑에 찾아오는 시어머니의 집념은 아무리 혀가 말리도록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라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미소지움, 어울림, 푸르지오, 개나리, 진달래 등은 어쩌다 반갑게 찾아지는 아파트의 이름이다. 정답게 어울려 미소 지으며 사는 이웃의 모습이 그려진다.

'복순네 미용실' 보다는 '수산나 헤어샵'에서, '미용사'보다는 '헤어디자이너'가 나의 머리를 더 예쁘게 만져줄 것 같고, '음식점'이나 '식당' 보다는 '가든'에서 구워낸 고기가 더 맛이 있을 것 같은 인식에서라면 그 반대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가든'이 '식당'을 밀어 냈을까. 무슨 말인지도 모를 단어의 무수한 간판들, 일간신문과 방송 등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외국어들이 밥보다 햄버거를 더 즐기는 우리 어린 세대의 의식까지도 물들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글줄이나 쓰다 보면 참으로 고운 우리말이 많음을 느낀다. 나는 외국어에 어두운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 말로 '시금털털' '거무죽죽'의 어감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침을 꼴깍 삼켰다'의 '꼴깍'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표현이 어려울 것 같다.

유렵여행 때의 일이다. 거리에 걸려있는 한글 간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나라에서는 ○○애니콜 휴대 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라는 안내인의 말에 어깨가 으쓱해 진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한편 그토록 인정을 받는 좋은 상품이라면 굳이 ○○애니콜이 아니더라도 '○○어디나' 등의 우리말의 상품명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외국에서 열리는 태권도국제대회에서는 구령은 우리말로 한다. 그러나 누구도 탓하는 사람이 없다. 나라 사랑의 길은 대단한 곳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일시 귀국한 조카가 그곳에서 낳았고 그 곳 학교를 다닌다는 자녀들을 데리고 나의 집에 들렀다. 아이들은 익숙하게 한국말을 하였다. 연유를 물으니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시키노라고 한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조카가 이 번 따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필자는 젊은 시절, 나라와 농촌을 위한다며 외국에서 개량된 종축과 과수 수종(樹種)과 특수작물까지도 수입에 앞장섰었다. 나의 농장에서도 우리 실정에 맞게 개량한다며 많은 금전과 노력을 들였다. 한편 조상대대로 전해져 오던 토종이나 재래종들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그것들이 얼마나 우리 한국 사람에게 귀중한 것이었던 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이제는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들을 복구하기에 힘쓰고 있다. 산방으로 돌아오며 말과 사물의 이름까지도 우리 것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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