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노라 돌아오던날(2)

[산방일기] 노라 돌아오던날(2)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126)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7년 07월 11일(수) 00:00
   
돌아온 노라를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노라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자기를 닮은 아주 작고 예쁜 병아리 열 마리를 데리고 와서 나와 동료 닭들 앞에 위세가 당당하다. 다른 큰 닭들도 암탉이 새끼를 거느리면 과거 그들의 위계질서와는 관계없이 상위를 인정받는다.

'노라'는 내가 기르는 토종 암탉 중의 한 마리의 이름이다. 가출을 잘해 붙여 준 이름인데 '인형의 집'의 노라는 집을 나가고 말았지만 우리 '노라'는 "나는 돌아왔노라"고 불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의문이 남는 부분은 닭 기르기에서 포란(抱卵)과 부화(孵化)작업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정확한 화씨 1백도의 온도, 70%의 습도, 하루에 4회 이상 알 굴리기 등 정교한 조작이 필요한 작업이다. 노라는 그런 과정을 알맞게 조작을 했고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그 과정을 추리해 보면 암탉 '노라'는 자기만 아는 비 안 맞는 장소에 저 품기에 알맞은 수효의 알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날, 산란을 중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참을성이 필요한 21일간의 포란(抱卵)을 했고, 습도는 흙바닥 이어서 자동조절이 되었을 것이다. '노라'는 자기가 낳고 품어서 깐 병아리 열 마리를 데리고 당당히 동료들과 내가 있는 계사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좀 아둔한 사람을'닭대가리'라고 낮잡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저들은 우리 인간이 대단하게 여기는 윤리니, 철학이니 하는 것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법과 조물주가 명한 종족번식의 의무를 합리적이고 의욕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다. 다만 인간이 품종개량이라는 명분으로 저들 사이에 끼어들면 그 순간부터 정교한 자연의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젊어서 소위 선진농업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온갖 작물과 가축의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꾀한다며 생애를 걸고 전력투구하며 살아왔다. 돌이켜 생각하면 재래종이 가지고 있는 자연에 순응하는 장점들은 깡그리 무시했었다. 토종들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 애써 만들어 낸 소위 개량종들은 제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고 종족을 유지하고 늘려 나갈 수 없는 장애자들이다. 1 년에 알을 2백70개를 낳는 개량산란계, '백색레구혼'은 종족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포란(抱卵)을 모른다.

인간의 학대 속에서도 멧돼지는 개체수를 늘려간다. 그 멧돼지가 조상(祖上)인 개량된 돼지 ‘란드레스’는 6 개월에 100kg으로 자라는 생산력은 있으나 사람의 손을 떠나는 날로 사라질 장애돼지다.

우리는 천지개벽 이래 이 땅의 풍토에 적응해서 살아온 동식물들과 오랫동안 조상들이 우리 풍토에 알맞도록 가꿔온 작물들의 소중한 품성(品性)을 모른 채 외래종, 개량종만 좋은 줄 알았다. 챙기지 못하는 동안 우리 땅에선 토종들이 멸종돼 사라져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재래종 콩, 팥, 들깨, 고추, 배추 등 우리 토종 농작물 씨앗 34종 1천6백79점이 미국에서 돌아온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 씨앗들은 미국이 대한제국 때부터 한국에서 근무한 외교관과 민간인들을 통해 채취해 간 것들이다.

본래 미국에는 콩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장, 수량(收量), 품질의 우수한 콩, '장단대두(長端大豆)'에 눈독을 드린 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종자를 가져다 대량 재배하여 미국이 오늘 날, 세계 콩 수출국이 되었다. 1960년대 말, 인도와 파키스탄을 굶주림에서 구해낸 녹색혁명의 주역 '소노라' 밀의 조상도 한국 토종 밀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서 들여온 다수확품종만 키우다 토종 종자가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

자기가 깐, 저를 닮은 병아리 열 마리를 극진히 돌보는 암탉 '노라'를 보면 대견하다. 나는 늦게나마 사라질 뻔한 토종닭을 어렵사리 구하여 계통을 이어갈 수 있음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알도 육(肉)도 수량(收量)은 적으나 맛에서 그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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