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 닭 우는 소리

[논설위원칼럼] 닭 우는 소리

[ 논설위원 칼럼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06월 28일(목) 00:00
차종순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청개구리들이 비올 때에 강가에 묻은 엄마를 생각하고 잘못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계기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베드로는 닭 울 때에 정신을 차렸다. 자신만만하게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던 그가 계집종 앞에서 한번도 아닌 세번이나, 그것도 맹세하고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정했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베드로는 울었다. 닭 울 때에 그도 울었다.

이러한 모습은 육체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습성에서 기인한다. 조금 따뜻하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변절하게 된다. 이 논리가 광야에서 모세에게 돌을 던졌고, 금송아지로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배드로처럼 방금 전에 했던 맹세를 부인하고 잊고 전혀 다른 맹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베드로이다. 아니 베드로가 그 정도인데 우리는 더 할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절하고 죄짓고 그 죄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우리에게도 다시 한번 새벽이 와야 한다. 닭이 울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영혼의 새벽을 깨우는 닭이 울어야 한다. 1900년대 초반에 신앙의 선배들은 닭 우는 수리를 듣고서 부끄러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괴로워하고 고백하며 태도를 바꾸었기에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 간음한 죄, 폭력을 행사한 죄, 살인한죄, 도적질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것이 실제 생활 속에서 나타났다.

만일 베드로에게 닭이 울지 않았더라면 그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어두운 새벽 미명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는 영원토록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는 괴로운 닭 울음 소리가 있어야 했다. 닭이 울 때에 그 마음의 찔림과 통회의 눈물이 그를 살려낸 것이다.

닭이 울 때에 베드로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그렇게도 가깝고 선명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들려왔다. 닭은 울어야 한다.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해줄 닭은 계속해서 울어야 한다.

부인과 가족, 재산을 모두 보내고 압복강 나룻가에서 홀로 남아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면서 "나를 축복하소서"라고 울부짖던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은 다음에 새 아침의 여멍을 맞이했다. 목사 임직은 몇일 앞두고 자신을 돌아보던 한 사람은 고등학교 학생증으로 신분을 속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을 뉘우치며 버스회사를 찾아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고 자유와 해방을 맞았다. 비록 많은 것을 포기하였지만 그들에게는 닭 울음 소리가 들렸다.

1백년 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신앙의 선배들은 애통하며 "이런 죄를 지은 제가 과연 하늘나라에 가겠습니까?"라고 울부짖었다.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상처를 숨기고 속으로 곪아가는 한국교회는 분명히 베드로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닭 울음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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