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에서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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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123)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05월 23일(수) 00:00
봄차림에 바쁘다. 다른 계절은 모른다. 봄은 어떤 의지(意志)를 가진 인격체가 좌정(坐定)하고 일을 벌이는 게 분명하다. 정서경님의 노랫말에 <산 넘어 남쪽에는 누가 살기에>라는 대목이 있다. 그 남쪽의 봄님이 평지에 있는 아랫 동네의 춘화(春化)작업을 끝내고 이곳의 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계절로는 오늘이 하지(夏至)라고 한다. 서울은 지금 초여름이라지만 해발 6백미터의 이곳까지 올라오기는 좀 힘들어 늦게 왔나보다. 평지의 계절과는 사뭇 다르다.

   
마당을 스치는 개울가에 미니버스 크기의 한 무더기 관목(灌木)이 있다. 이 녀석이 속칭 '조팝꽃'이라고 하는 설류다. 겨울에 함박눈을 이고 있을 적의 그 눈꽃(雪花)은 볼만하다. 지금은 나긋나긋한 버들을 닮은 가지에 눈을 이고 있는듯하게 꽃을 피운다고 해서 그 이름이 설류인가 보다.

설류, 해마다 이 꽃이 필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다가 주변을 정리할 기회가 있기에 2년 전, 큰길에서 산방까지의 진입로에 약 천(千)그루를 심었으나 관리가 소홀했다. 그러나 그 여린 것들이 막심한 가뭄도, 한겨울 추위도 이겨내며 80~90%가 뿌리를 내렸고 올봄에 잎을 돋웠다. 그리고 아직 키도 한 뼘 크기의 작은 녀석들까지 꽃을 잔뜩 달고 나보란 듯이 도열해 있다. 안쓰럽기도, 제구실을 하는 녀석들이 대견하기도 하다.

병꽃, 작년에는 뒤란 울타리를 따라 병 꽃을 아마 3 백 그루는 되게 심었다. 이 고장에서 피는 꽃 중에 가장 촌스러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꽃이 이 방그러니 계곡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생각에 애착을 가진다. 이 녀석이 설류화의 뒤를 이어 지금 만개했다. 마치 밉상은 아니나 세련미는 없는 시골 아낙의 모습이다. 번식력이 대단해서 골 안에 지천으로 피었다. 눈여겨 보면 꽃 빛깔이 조금씩 다르게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리움, 13일은 어버이주일이었다. 교회에 가니 조무래기들이 옷깃 앞섶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준다. 내 나이 생각을 할 겨를 없이 가슴이 뭉클, 가신 어른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튿 날 가까이 사는 동생과 시속 백 킬로미터로 3 시간을 달려 김포 가족묘역에 이르렀다.

무덤 앞에서 무릎 접고 잔디에 얼굴을 묻었다. 옛글에 <춘초(春草)는 연년록(年年綠) designtimesp=25141>이라 했던가, 인간과 다르게 봄풀은 해마다 새로 돋은 신록(新錄)의 향기가 코끝에 상큼하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아버지면서도 친구 같고, 선생님 같던 어른은 한 번 가신 후, 그 흔한 전화 한 통 없다. 그리움에 가슴이 아리고, 하염없고, 억울함에 목이 멘다. 동생이 다가와 "오빠! 어른들 가신지가 20년이 넘었어요, 아직도 서러워요?"한다. "나이 들면 눈물 아귀가 느슨해져서 그런가봐. 그러는 자네는 왜 눈가가 그런가?" 울며 웃으며 산을 내려오는 데, 어느새 흐린 봄 하늘은 굵은 빗방울을 흩뿌린다.

툇마루의 향연, 나의 서재에는 10평은 되는 넓은 툇마루가 있고,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다.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는 가족들과 친지, 문우, 누구나 둘러앉아 차를 마신다. 여기에는 사람 외에 동참하는 식구들이 있다. 오늘 아침에도 어치, 찌르레기, 동고비, 나무발발이, 딱새, 노랑할미새, 진박새가 왔었다. 이웃에 깃들인 텃새, 철새들이다. 이 녀석들을 위해 탁자 밑, 후비진 곳에다 알갱이들을 놓아 두는데 요즈음 같은 번식하는 시기에는 잘 먹는다.

오늘 아침에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 동고비의 암수만이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먹이를 먹는다. 겁 많고 부끄럼이 많은 다른 새들은 툇마루 옆 느티나무에 앉아 사람들이 커피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거실로 후퇴를 했다.

그때 산까치라고도 하는 어치가 우두커니 나무에 앉아 있다. 눈여겨보니 탁자 밑에서 아침 끼니를 하는 찌르레기 암수가 먹기를 기다렸다가 내려와서 먹었다. 산까치는 마을까치도 이길 수 있는 사나운 새다. 찌르레기는 어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어치는 아무리 약자라도 먹기가 끝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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