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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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04월 12일(목) 00:00
'하얀 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얼마 전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끌다가 종영한 드라마들입니다. 이 두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의학 용어가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의학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 안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 자문자답을 해 보았습니다.

이 두 드라마를 보며 문득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우는 장기려 박사가 생각났습니다. 서울의대 전신인 경성의전을 수석 졸업하고 59년 국내 최초로 간대량(肝大量) 절제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1995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소외된 이웃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평생에 걸쳐 묵묵히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50년 12월, 6ㆍ25 한국전쟁 중 평양 의과대학부속병원 2층 수술실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어쩔 수 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국군 장병들과 함께 황급히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랑하는 아내, 다섯 자녀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그는 늘 빛 바랜 가족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45년을 홀로 지냈습니다. 1995년,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산 복음 병원 원장으로 40년, 복음 간호대학 학장으로 20년을 근무했지만, 그에게는 서민 아파트 한 채, 죽은 후에 묻힐 공동묘지 10평조차 없었습니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이 하소연하면 그는 환자의 치료비 전액을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처리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월급은 항상 마이너스였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병원 운영도 어려워지자 결국 병원에선 무료환자 처리를 원장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정권을 박탈당한 이후부터 장 박사는 어려운 환자들이 생기면 야밤에 탈출하라고 알려주고 병원 뒷문을 열어 놓았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그는 "의사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이 허락한 소명"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 분이 북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 하며 쓴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란 시를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감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 지난 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수 있다 /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된다. //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수 있다 /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 거울속의 내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 밤하늘에 별이 있다 / 그리고…세상에 사랑이 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장기려 박사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이웃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 노래합니다. 그 분의 감사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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