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텃새들(3)

산방의 텃새들(3)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120)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04월 10일(화) 00:00
어느 해 봄, 4월초였다. 산방 뒤 언덕에 앉아 이 계절에 산방 둘레에 피는 생강나무 꽃을 보고 있었다. 별안간 "쏴-", 낮으면서도 몸이 흔들릴 정도의 무엇의 움직임을 느꼈다. 얼핏 옆을 보니 갈색의 파도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물체가 지면을 스칠 듯, 지나간다. 수 천 인지, 수 만인지 모를 새의 무리다.

뒤처진 몇 마리를 보니 뱁새다. 이곳 산야에서라면 어디에고 있는 텃새다. 몸은 작아 참새의 절반크기 쯤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굴뚝새 다음으로 제일 작은 새에 속한다. 올해도 4~7월까지, 이미 시작 된 번식 철인데 잡목림 속, 덤불 속, 마을의 울타리 나뭇가지 어디에고 홍차 잔 만한 집을 오목하게 짓고 4~5개의 알을 낳는다. 암수가 같이 알을 품고 새끼도 같이 기르는데 실수 없이 잘 기르기로 유명하다.

그 새끼 잘 기른다는 게 문제다. 평소에는 수 십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며 먹이를 구하는 일은 있으나, 그날은 무슨 연유로 그렇게 큰 무리를 이루었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새에 대한 나의 관조(觀照)의 관점이 달라졌다. 그 흔하고 많은 뱁새가 암수 한 쌍이 한 해에 3~4회, 한 번에 4~5마리씩의 새끼를 깨워 길러내니 그 번식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지난날에 누구라도 '동물의 세계' 같은 영상물에서 뻐꾸기 등이 그 작은 새둥지에 알을 낳고는 자기 새끼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뻐꾹, 뻐꾹" 울어대는 탁란(托卵)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작은 새들의 파괴적인 번식을 염려한 조물주는 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두견이 등 두견이과에 딸린 새들에게 그 수효를 조절하라는 임무는 주었다는 것을 안다. 자연의 조절구조는 참으로 정밀하고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그의 조절 작업은 이렇다. 두견이과들은 이 작은 새둥지에 자기 알 한 개씩, 한 계절에 20~30개의 알을 낳는다. 그 알들은 하루 이틀 먼저 알에서 나와 본래의 알들을 등으로 떠 밀어 둥지 밖으로 내친다. 뻐꾸기 한 마리의 탁란 행위로, 작은 새들의 번식을 한 해에 80~1백마리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는 계산이다. 연 중, 동남아 등 더운 지방에서 지내다가 봄과 여름 한 철 우리나라에 와서 탁란을 하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20개 안팎의 알들은 전부 애비가 다르다는 것, 두견이 과의 암컷들은 정조관념이 없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박새. 나의 서재 거실의 소파는 창문을 등지고 앉게 놓여있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무언가 등 뒤에서 아른거리는 걸 느꼈다. 뒤돌아보니 박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앉으려는 듯 유리 창 밖에서 날개 짓을 하며 애를 쓰고 있다. 집 안에다 알을 낳고 새끼 기를 집을 짓고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이 새를 안다. 두 세 살인데 나와의 인연은 지난 여름부터이다. 지난 해 이른 여름, 지금의 이 서재를 짓기 전 나는 정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무렵부터 나의 주변을 맴돈다. 본래 정이 많은 새다. 내가 미처 정자 어느 구석에 집을 지어주지 못했더니 정자 개울 건너, 큰 나무 밑에 깃을 들이고 새끼를 길러 냈다.

이 녀석들은 연중 산방을 떠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텃새다. 정자에서 한여름 같이 지내면서 관찰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새와는 달리 어린 것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작으면서도 꼭 엄지들을 닮아 앙징스럽고 예뻤다. 이 박새도 지금은 숫자가 많이 줄어 희귀(稀貴)한 새가 되었으나 내가 어렸을 무렵에는 시골에서 참새만큼이나 흔한 새였다.

농촌에서는 깨를 털고 난 빈 대궁으로 박새방석이라는 덫을 만들어 쉽게 이 새를 잡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수 십 마리씩 잡아 구어 먹던 기억의 죄책감으로 지금은 이 박새의 번식을 좀 더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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