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소유냐 삶이냐

데스크 칼럼 / 소유냐 삶이냐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02월 24일(토) 00:00
성격 좋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후배 기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집안의 장손인 이 친구에겐 백수(百壽)를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가 계신데 노인성 치매 질환을 앓고 계십니다. 온 가족이 돌보는데 한계가 있어 최근 요양원에 가 계십니다. 얼마 전 명절을 맞아 집으로 모셔와 오랫만에 가족들이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요양원으로 가셔야 하는 날 아침, 출근하는 후배기자를 부르시곤 "어디 가시오? 이렇게 일찍!"하고 물으셨답니다. "할머니 저 출근해요." 손자가 대답하자 "삼촌 잘 다녀와요… 밥은 꼭 사먹고." 이렇게 대답하시더랍니다.

어느 사이엔가 할머니의 삼촌이 되어 버린 그 후배는 그렇게 그냥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늘 지니고 다니는 카메라로 사진을 한장 찍고 할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고 합니다. "사랑해요,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고 속삭이며.

후배는 그날 아침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저 남는 건 옷 한벌과 누울 자리, 숟가락 정도인 것 같아요. 나이와 세월 앞에서는 돈도 카리스마도 모든 것도 다 소용이 없네요. 그저 누울 자리와 한벌 옷, 따뜻한 말 한마디면… 겨우 그것 하나면 또 하루의 태양이 뜨고 저무는걸요"

지난해 대학교 동창인 친구가 자신의 저서를 한 권 보내주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서가에 꽂아만 두었다가 최근 우연히 읽어보게 됐습니다. 성공회 신부인 이 친구는 그 책에서 현대인의 우상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이불유(生而不有)'라는 중국의 금언을 소개하며 '자유와 집착, 존재와 소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생이불유는 "천지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않으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필자는 "계절의 변화로 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들판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 차 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보낸다. 그리고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한다. 그렇게 할 뿐 소유하지 않는다. 수많은 나무와 풀과 산짐승들이 살고 있는 산도 마찬가지이다. 새들이 마음껏 날개치게 하는 하늘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철새들의 길이 되어주고 자유로운 삶의 터가 되어 줄뿐 단 한 마리도 자기의 것으로 묶어두지 않는다. 새들의 발자국 하나 훔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은 더욱 넓고 푸른 것"이라 말합니다.

필자는 인생이 '자유와 존재'의 삶이 아니라, '집착과 소유'의 삶으로 이끌어질 때, 그것이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삶'임을 증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은 곧 자유의 삶입니다. 불필요한 성을 쌓는 우상의 삶이 아닙니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 바람 한 올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그것이 하나님께서 권면하시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집착과 의존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에 대한 의존과 집착, 돈과 재물, 권력에 대한 의존과 집착 등 그 모든 우상들을 다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