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산죽(山竹)을 아시나요?

[산방일기]산죽(山竹)을 아시나요?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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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9일(수)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개울건너에 한 무더기 산죽이 있다. 4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나도박달나무'와 피나무의 그늘이 드리우는 곳에 한 무더기의 산죽이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때는 여염집 안방만 한 군락(群落)이더니, 지금은 배나 되게 판도를 넓혔다. 이 나무무리가 어떻게 무슨 경로로 여기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항간(巷間)에서는 조리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해서 '조리 대(竹)'라고 하고, 식물학적 분류로는 '볏과에 속하는 목본'이다. 산죽은 봄, 여름, 가을은 무성한 나무들과 억새나 갈대 같은 키 큰 풀에 가려지고 짓눌려서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지 못한다. 수고(樹高)라야 그 군락에 들어서면 사람의 무릎에 닿을 정도다.

다른 식물의 기세에 눌려서 가녀린 이 나무무리가 사위어 없어지지나 않았을까 눈여겨보았었다. 그러나 늦가을 산야의 푸르름 들이 조락(凋落)하는 시기를 맞으면 서둘지 않고 느긋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녀석들처럼 인간에게 별 쓸모는 없으면서도 때를 기다려 자기를 드러내는 종류도 흔치 않다는 생각을 한다.

대나무는 온난(溫暖)한 기후를 좋아 하는가 보다. 나의 고향, 38선 이북, 우리 집의 뒤란구석에는 '살(矢)대(竹)' 무리가 있었다. 그 대나무는 화살과 담뱃대를 만들기에 맞춤한 굵기와 높이여서 옛날 전쟁 때에는 군납에 시달렸다던 얘기를 어른들에게서 들었었다. 그 고장이 댓과(竹科)의 북방 한계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키 큰 대나무를 처음 본 것이 이남에 와서 충청도 아랫녘에서였다.

학자들은 설악산에는 지금의 백년 이상 수령(樹齡)의 소나무가 마지막일거라고 한다. 옛날에는 그 곳에 곰이 많아 산죽의 식생(植生)을 조절, 알맞은 밀도였으나 곰이 멸종된 지금은 천적이 없는 '조리대'가 밀생하여 솔 씨가 뿌리내려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곰은 댓잎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비슷한 예는 제주에도 있었다. 그 섬의 더운 기온과 관계가 있는지 온 섬의 산야를 점령하며 판도를 넓히고 있었다. 한라산의 상당히 높은 곳까지 이르니 댓잎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노루와 고라니가 인가(人家)근처까지 내려와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다가 밀렵꾼들에게 희생이 되는 녀석들이 많다고 했다.

사람들은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경기에서 우리가 좋은 성적을 올릴 때 열광한다. 그렇게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국위를 선양하는 경기 종목 중에는 비인기종목도 있다. 평소에는 그런 경기도 있느냐 싶게, 관심의 대상 밖에 있는 송구도, 필드하키도 그렇다. 그 종목의 선수들은 누가 인정하든 말든 묵묵히 연습에 열중하다가 국제무대에 나가서는 금메달, 은메달을 차지하며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볼 때면 나는 늘 이 산죽이 떠오른다.

줄기가 늡늡한 나무, 여름에 잎이 청청한 나무, 가을에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단풍들, 그리고 그 나무들의 쓰임새들을 보면서 누가 이 난쟁이 산죽을 눈여겨 보려나 하겠는가, 그러나 이 녀석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묵묵히 누구의 이목도 닿지 않는 땅 속에서 뿌리를 넓혀가고 있다. 뿌리줄기가 빽빽하면 땅 위에 자기만의 덤불을 이루어 다른 식물이 침범을 못하게 할 수 있다.

시나 서예와 다른 문예들에서도 송죽(松竹)의 절개를 상찬(賞讚)하는 것은 소나무와 함께 서리와 눈의 오상고절(傲霜孤節)에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데서 사군자(四君子)에 들고, 십장생(十長生)으로 꼽히는가 보다. 나의 거처는 비록 산중이라고는 하나 초록이 귀한 겨울 계절에는 이 산죽이 있는 데를 찾는다.

거기가 눈 위일 지라도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마주 보며 저들이 탄소동화작용으로 내뿜는 산소를 들어마시고, 나는 저들이 필요한 탄소를 불어준다. 그 때 그와 나는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의 진한 애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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