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자의 음악에세이]자유롭게 춤추며

[유혜자의 음악에세이]자유롭게 춤추며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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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08일(수) 00:00
로드리고의 기타협주곡 '어느 귀족을 위한 환상곡'을 들을 때마다 환상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 음악이야말로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자유자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햇살, 따듯한 훈풍 속에서 화초가 만발하고 새가 지저귀는 너른 정원,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하늘에 걸린 기타 줄을 날개로 툭툭 퉁겨서 맑은 소리를 내는가 하면 떼지어 날아가는 작은 새의 날개들이 스치는 밝은 소리가 하늘 가득 채워진다. 설레는 날개와 힘찬 날개 스침이 기쁨과 슬픔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원한 아픔도 몰아내버리고, 신명이 나서 바람을 일으키다가 푸른 하늘 깊숙이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환상이란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느끼는 상념, 종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이란 사전적 풀이가 아니더라도 이 음악은 나에게는 시적인 환상도 일게 하고 소설적인 환상도 자아내게 한다. 이 곡목이 '…환상곡'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다채롭고 화사한 상상을 일으킬 것이다. 세 살 때 시력을 잃어 실상을 볼 수 없었던 로드리고(Rodrigo, Joakin 1901-1999)의 음악적 환상이 얼마나 폭넓고 뛰어난 것임을 느끼게 되는 음악이다.

표제인 '어느 귀족을 위한 환상곡'에서 그 귀족이 누구인가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 없이 그 귀족이 '나'라는 전제 하에 들어도 된다. 내가 들으면서 기쁨을 느끼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마법에 걸려 어두운 궁 속에 갇혀 있는 공주를 중세의 기사가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구출해 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상상해도 좋으리라. 환상이란 '꿈 더하기 유머'라는 임어당의 말이 있고 보면 이 곡을 나를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로드리고가 이 음악보다 15년 전에 작곡한 '아랑후에즈 협주곡'을 유명 기타 연주자인 레히노 사인스 델 라마사에게 헌정 했듯이 이 작품도 위대한 기타리스트 세고비아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다.

환상곡이란 악상 창조와 전개가 자유로운 기악작품을 말하는데, 이 음악이야말로 로드리고가 환상이 느껴지는 대로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곡해서 변주곡 풍의 환상곡을 이룬 매력 있는 작품이다.

오케스트라가 당당하게 시작하고 이어서 기타가 자신 있게 연주하는 1악장, 솔로 기타가 여유 있게 연주하다가 애상적으로 빠져드는 듯하면 다시 오케스트라가 받쳐주려고 힘차게 나온다. 2악장은 작곡자가 '나폴리 기사의 팡파르'로 제목을 붙인 춤곡이다. 몇 차례나 나오는 기타의 반복 부분이 마치 제자리 회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당황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10분이나 되는 2악장이 지루하지가 않다. 특히 시칠리아의 춤곡을 스페인 풍으로 만든 춤곡 아다지오 부분이 있어서 더욱 경쾌하다. 작곡가는 나폴리와 스페인이 동맹관계에 있었던 시기를 기억나게 한다고 하지만 그런 역사를 알 리 없는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어깻짓이라도 하면서 들을 수 있다. 3악장 '횃불의 춤'은 기타가 관현악과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듯 번갈아 연주된다. 끝부분이 변화 있게 활달하게 연주되는 4악장 등 생동감 넘치는 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시각장애 학생들이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했었는데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나름대로 상상을 통해 해석하고, 허용된 범위 안에서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면서 정말로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그들의 진실로 보고 싶어했던 간절한 마음이 오히려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며 느끼게 했을 것이다.

상상력과 환상의 창조물인 예술품과 교감하여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창조 의욕과 아이디어를 낳게 하기에 현실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며 '어느 귀족을 위한 환상곡'의 볼륨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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