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눈달치'의 추억

[산방일기]'눈달치'의 추억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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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01일(수)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가을 날씨가 많이 가문다. 뜰을 스치는 물 많던 개울에 흐름이 줄었다. 어른의 넓적다리만 하던 물줄기가 더 가늘어졌다. 옛글에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는 말이 있다. 가을이 되니 개울바닥의 돌이 드러나고 물의 흐름은 밑으로 내려갔다는 말이다.

하늘에는 새가, 산야에는 길짐승이 달려야 한다. 그리고 물에는 물고기가 헤엄을 쳐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야생의 것은 그게 쓸모가 있건 없건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나라 안의 그 많은 공기총이 잡은 새를 식용이나 다른 데 유용하게 쓴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의 이웃인 저들을 그저 장난으로, 재미로 죽이는 것이다.

인적 드문 산속에 살다보니 본래 이 터전의 주인들이었던 새와 짐승들은 침입자인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피하였다. 이제는 내가 자기네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도리어 친밀감을 보이며 이웃이 되려고 한다. 눈여겨보니 개울에 사는 물고기도 사람을 따르고 반기는 것이다.

작년 가을과 지난 겨울에도 지금처럼 흐름이 줄어들었다. 개울의 물고기들을 노리는 적은 많다. 이곳 단골들은 노랑부리해오리기, 뜸부기, 물까마귀 등이다. 이 녀석들은 물이 많으면 민첩한 물고기 사냥이 어렵다가도 지금 같은 갈수기가 되면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어 도망갈 곳이 없는 고기들을 많이 잡아 먹는다.

그러나 지난 3월 하순께였다. 봄비에 물이 불어나니 어디에 숨어 살다가 나왔는지 몇 마리가 보였다. 그 무렵은 개울에 얼음이 덮였고 아직 물이 차건만 햇볕이 드는 낮에 몇 마리씩 떼지어 다닌다. 아마도 산란을 하려나보다 생각했다. 연한 갈색의 몸길이 8~9.5밀리의 이 고기의 이름을 몰라 촌로들에게 물었으나 정확한 이름을 알기는 어류도감을 보고서야 특급수에서만 사는 '줄몰개'라는 것을 알았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잦은 비에 물이 불어 개울웅덩이가 꽤 넓어졌는데 수없이 많은 까만 점이 움직인다. 알에서 부화된 새끼 '몰개'들이다. 어려서일까 몸통은 투명하고 눈알만 보였다. 가축의 사료를 물에다 뿌려주었다. 알갱이가 굵어 먹지를 못하니 바닥에 가라앉아 버린다. 큰 그릇에 사료를 담고 물을 부어 플랑크톤을 발생시켜 그 국물을 개울에다 쏟으면 어린 고기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리를 기르기로 했다. 개울기슭에 먹이를 놓아주니 열 마리의 오리들은 물에서 올라와 먹이를 먹고는 물에다 똥울 누었다. 어린 물고기가 모여들어 먹어치워 개울물을 깨끗이 정화한다.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게 이런 건가, 오리를 키우고 쉽게 물고기에게 사료를 공급한다.

사람이 얼씬하면 모여드는 이놈들은 번식이 빠르다. 아래 위, 두 웅덩이의 고기가 짐작으로 오천 마리는 됨직하다.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다. 오천 명, 한 사단이면 ○○부대면 됐지 병사 개개인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다. '눈달치'라고 했다. 꽁치, 갈치, 참치, 하는 걸 보면 '치'는 고기를 일컫는 우리의 말이 확실하다. 눈만 달린 것 같은 고기, 그래서 '눈달치'다.

오리가 헤엄치는 밑을 녀석들이 무리지어 다니면 오리는 목을 물속으로 늘여 잡는 시늉을 한다. 놈들은 도망하는 척 할뿐 잡힐 녀석들이 아니다. 한 웅덩이 안에서 양식을 나눠 먹으며 사니 한 식구다. 내가 다가가면 오리와 '눈달치'들이 반갑게 모여드는 환영을 받는다.

그러던 지난 7월, 11호 태풍 '에위니아'가 몰고 온 구름은 이곳 치악산과 백운산지역에 4백밀리의 비를 쏟아 부었다. 성난 황소같이 내달리는 물줄기는 바윗돌을 굴려 내리고, 자갈과 토사로 웅덩이를 메웠다.

그리고 나의 오리와 '눈달치'사단을 싹쓸어 내려갔다. 둔덕으로 기어오른 오리 네 마리가 살았을 뿐, 개울 웅덩이 안 밖에 모르는 '눈달치'들은 도도한 탁류에 휩쓸려 원주천, 섬강(蟾江)을 거쳐 남한강으로 쓸려갔다. 방그러니의 고요하고 맑은 웅덩이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홍수 때에는 위에서 내려오는 작은 고기를 잡아먹느라 흥분한 메기, 뱀장어, 민물농어 등에게 먹히고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을 '눈달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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