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산방의 중추월

[산방일기] 산방의 중추월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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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7일(화) 00:00
   
장돈식

햇볕과 달빛을 대비해 본다. 시대에 따라, 느끼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양하게 발달한 인공조명에 휩싸여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월광(月光)이나 별빛의 존재는 그리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의 태양과 달빛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젊어서 농사를 지었다. 8월 하순, 말복이 가까운 계절의 햇볕은 뜨겁다. 농부들은 마지막 세 벌김을 매기 전에 논에다 물을 깊게 담는다. 벼가 이삭이 팰 때, 태풍이 잦을 때는 깊은 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오경에 이르면 작렬하는 태양아래 논의 물은 뜨겁다. 인기척에 놀라 논으로 뛰어드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두 다리를 쭉 뻗으며 눈알이 뿌옇게 된다.

옆 줄 맞춰 늘어선 젊은 농부들의 등골엔 땀이 도랑물처럼 흐르고, 갈대처럼 잘 자란 볏 잎에 눈을 찔리면 눈물이 흘러드는 땀과 섞여 쓰라리다. 그러나 쭉쭉 자라는 장 잎과, 임신한 아낙처럼 이삭을 배고서 불룩한 벼줄기를 볼 땐 땀 흘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구위의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은 햇볕이라는 천리(天理)를 생각하며 작렬(炸裂)하는 태양의 여름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이든 지금은 다르다. 달빛의 유현(幽玄)함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달을 즐김에도 사람마다 격이 다르다. 보통 요즘 같은 추석 달을 즐기기 위해서 달이 먼저 올라오는 동해안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보도매체들은 전한다.

그래서인지 영동고속도로가 길이 메이고 동해변의 좀 높은 언덕은 인산인해라고도 했다. 떠오르는 달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리라. 하지만 그런 사람의 대개는 중얼거리며 무얼 기원하는 모습을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는 나약한 인간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시인 백거이는 이사 가서 첫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뜰에 심겨진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집의 전 주인을 찾아가 집값을 더 주었다고 한다. 달을 사랑한 대표적인 시인은 역시 이태백이리라. 그의 시 문월(問月)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옛 달을 못 보았으되 저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으리.
그제나 이제나 사람은 흐르는 물.
그들은 저 달을 보며 무슨 시름에 잠겼으랴.
(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 古人今人若流水)

전하는 얘기로는 달을 사랑하던 이백은 호수에 어린 달을 보듬으려고 배에서 뛰어들어 죽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장성군의 둘레 12km인 함동호숫가에 사는 수월처사(水月處士)김형규씨는 달이 커지기 시작하는 음력 초열흘 무렵부터 다구(茶具)를 실은 배를 띄우고 아무도 없는 호수에서 달빛을 받으며 작설차(雀舌茶)를 마신다는 신문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의 경우, 신경이 둔한 편인지 사물에 잘 놀래지 않는다. 설사 벼락이 10m가까이에 떨어진다 해도 별로 놀라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깊은 밤, 바깥 공기가 차고, 곤히 잠에 빠져 있을 때일지라도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내 침실에 어렸다면 경풍하는 사람처럼 놀란다. 밤이 깊다 해도 옷을 껴입고 마당으로 내려서는 때가 많다. 집이 산에 둘려있는지라 평지의 월출보다는 한 두 시간이 늦는다. 따라서 수평선이나 지평선에서 솟는 쟁반 같은 달은 볼 기회가 없다. 따라서 나는 중천에 뜬 천중월(天中月)을 우러른다. '달은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구름을 벗어난 달은 그렇게 환하고 밝다'고 팔만대장경은 쓰고 있다. 중추가 며칠이나 지났는가, 지금은 새벽 두 시, 하현(下弦)으로 많이 이즈러 졌다. 그러나 음력 보름을 맞으면 다시 둥글어 지겠지.

달이 뚜렷하여 벽공(碧空)에 걸렸으니
만고풍상(萬古風霜)에 떨어짐 즉 하다만은
지금에 취객을 위하여 기리비춰 주노매라.
선조조(宣祖朝)의 충신(忠臣) 이덕형의 시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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