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노래하듯이

[음악에세이]노래하듯이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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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1일(수) 00:00
유혜자

백합과 백장미로 장식된 예식장은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결혼식의 예물교환 순서로 신랑신부가 마주보고 서자 실내악 팀이 연주를 시작한다.

예전에는 '꽃의 노래'더니 언제서부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 2중주곡(D장조)중 칸타빌레로 바뀌었다. 기타부분을 예식장에서는 피아노가 대신하고 있다. 파가니니의 작품 중엔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 것이 많지만, 이 음악만은 쉬워서 학생들 실내악 팀들도 결혼식이나 행사장에서 유려하게 연주한다.

결혼하는 이들이나 주례는 식을 진행하느라 어떤 음악이 연주되는지 관심 없겠지만 나는 음악에 빠져들 때가 많다. 누가 처음 결혼식 순서에 이 음악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꼭 맞는 음악을 택했다는 생각이다. 두 사람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아야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조화하며 좋은 화음의 2중주가 될 수 있듯이 행복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칸타빌레'가 '노래하듯이'인 것처럼 가정과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응하며 노래하듯 살라고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에 윤기를 주고 신체활동에도 바람직한 자극이 되는 등 음악본연의 효용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파가니니의 다른 곡들은 단조가 많아 애잔하고 슬픈 사연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음악은 D장조라 슬픈 그림자 없이 화합을 생각하게 한다.

파가니니(Paganini, Niccolo 1782-1840)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불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어느 곳에서나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파가니니처럼 저 부부도 남이 부러워할 기쁜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예물교환 순서가 끝났다.

아, 파가니니도 화려한 연주 테크닉으로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파가니니 기교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그의 숙소 옆방에 들었으나 연습하지 않고도 무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 기교에 더욱 신비감을 가졌다. 비법을 배우려고 제자가 되려는 사람도 많았으나 그는 연주여행으로 워낙 바빠서 단 하나인 제자에게도 비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파가니니에게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연주 때문에 '악마의 화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이어진 주례사는 이웃과 친척을 도우라고 한다. 나 한 가정만 잘 살아서는 행 복할 수 없고, 가족과 친척, 이웃도 잘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살아서 자극을 주라고 한다. 요즈음 독신자가 늘어가는데 아무개네 처럼 잘 산다면 결혼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라는 것이다.

파가니니는 파리에서 흥행실패로 빚에 허덕이는 베를리오즈를 다시 재기하게 했다. "친구여, 베토벤의 사후, 그를 다시 소생시킨 이는 베를리오즈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천재성에 어울리는 그 신성한 작품들을 향유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셨으니, 내 경의의 표시로 2만 프랑을 드립니다. 부디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는 편지와 함께 아들에게 돈을 전달하게 했다. 천재는 역시 천재를 알아보나 보다.

이런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음악인들에게 예술적인 자극과 영향을 준 파가니니. 슈베르트는 파가니니의 연주에 감동 받아 책을 팔아 연주회에 갈 만큼 열광적이었고, 슈만은 그 연주에 매혹되어 음악가가 될 결심을 굳혔다. 리스트는 16세에 파가니니의 연주에 반해서 '나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다짐하여 훗날 그 뜻을 이뤘다.

'노래하듯이' 뜻인 '칸타빌레'음악은 이상적인 꿈을 품고 결혼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가는 요즈음의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경쾌한 퇴장 행진곡에 맞춰 나오는 신랑신부에게 축하 화약을 터트리는 소리가 나의 이런 상념도 퇴장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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