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빈 대궁

[산방일기]빈 대궁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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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27일(수)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텃밭에 옥수수를 몇 이랑 심었다. 잘 자라서 올해도 실컷 먹고, 친구들을 불러 풍성한 옥수수 파티도 했다. 그중에는 오는 해에 심을 생각으로 잘 생긴 이삭을 달고 있는 몇 그루를 더 영글도록 세워 둔 것도 있고, 이삭만 풋 강냉이로 따 먹고 대궁은 밭에 그냥 서 있는 것도 있다.

모두 여름의 푸르름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종자이삭을 달고 있는 그루는 푸른 기운이 더 있다. 계속해서 열심히 수분을 빨아올리고 탄소동화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겠다.

한편 이미 옥수수를 따낸 빈 대궁은 더 삐쩍 말랐다. 기온이 아직 더우니 생육작업을 계속 할 수도 있고, 열매로 갈 양분을 제 몸 가꾸기만을 위해 쓰는 빈 대궁은 더 젊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반대로 종자이삭을 달고 후세를 가꾸는 대궁은 고달픈 일임에 틀림없겠건만 오히려 청청하다. 임무가 있는 삶이라서 식물생리에 미치는 작용이 다른가보다.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할 일이 없어 시간과 영양이 과잉인 사람이 너무나 많은 세상인데, 두 셋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독신여성보다 더 젊어 보이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할 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있다. 외모가 아니다. 정신세계에서 나타나리라. 생에 대한 정열, 사업취진의 패기 등에서 큰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무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니는 황폐한 심성(心性)들이 얼마나 세상을 어둡고 스산하게 하는 가를 생각해 본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은 그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여자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등에 어린 애를 업고, 한 손에도 어린 것의 손을 잡고 갈 때'라고 했다.

자연을 관조(觀照)하노라면 조물주는 이 지상의 모든 생물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생욕(生慾)과, 후세를 키우는데 꼭 있어야 하는 번식욕(繁殖慾)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동, 식물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대명제(大命題)에 그렇게 충실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 '호모사피엔스' 즉 인간만이 그 흐름에서 일탈하려고 앙탈하는 몸짓이 안쓰럽다. 예로 천부(天賦)의 생명을 이승에서 향유하지 않고, 좀 어려운 삶을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거부하고, 후세를 이어가라고 있는 성욕을 쾌락 전용으로 여기고, 상품화로까지 잇는 생물은 인간이외에 많지 않다.

근처 산비탈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지층(地層)이 바위설렁이라 이 나무의 생육환경은 몹시 척박하리라. 수 십 년이나 자랐건만 늡늡하지 하지 못하다. 이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별로 크지도 않은 줄기와 가지에 수 천 개의 솔방울을 달고 있다. 반면에 경사도 심하지 않고 흙이 많은 산지(山地)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몇 개 달지 않았다. 솔방울은 소나무의 번식수단으로 갈피마다에는 날개를 단 솔씨가 듬뿍 들어있다.

지난 날에 나는 과수나무를 많이 가꿨었다. 살이 깊은 밭에 비료를 듬뿍 주면 나무는 과일을 잘 맺지 않는다. 대신 잘라 버려야하는 도장지(徒長枝)만 열심히 뻗는다. 반대로 질소(窒素)성분이 많은 비료를 자제하여 나무를 약간 피곤하게 하고, 쓸데없이 자라는 가지들을 전정(剪定)하면 결과지(結果枝)를 많이 내며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다.

인간사와 비춰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는 형편이 보편적으로 오늘날만큼 풍요로웠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가임(可姙)여성들은 영양과잉을 자제하느라고 많은 애를 쓰는 이들을 본다. 그런데 출산율은 나라의 기본이 흔들릴 만큼 저조한 현실을 보는 심경은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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