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닭 가족

산방의 닭 가족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8월 09일(수)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잔디밭을 누비고 다니는 한 닭 가족을 바라본다. 수탉이 한 마리. 암탉이 대여섯 마리다. 그리고 계순이는 제가 낳은 알을 품어서 깐 아홉 마리의 병아리를 데리고 다닌다. 계순이는 토종 암탉 중 한 마리의 이름이다.

   
산방일기 삽화
나는 젊어서 가업으로 양계를 하면서 닭의 사회에 죄를 많이 졌다는 생각이다. 지금과 달리 수 천, 수 만 마리를 사육하는 소위 기업양계를 했다. 본래는 운동장이 딸린 계사(鷄舍)를 짓고 평면사육을 하던 것을 1960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한 입체식(立體式)양계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13번 굵기의 철사로 높이,넓이,깊이 모두 30센티미터의 케이지(상자)를 3단으로 쌓아올리고 그 철사상자 한 칸에 암탉 두 마리 씩을 넣었다. 인간사에 비기면 아파트이고 사람으로 따지자면 반 평 면적에 두 사람이 들어가 먹고,자고,생산하는 격이다. 닭은 자기가 낳은 알에 애착을 느낀다.

그러나 낳는 즉시 경사가 있는 바닥 철망 위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 콤베어 벨트를 타고 집란실(集卵室)로 직행, 자기가 낳은 알을 품어 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한다. 암탉은 그 공간에서 1년에 2백70개 이상의 알을 낳아야 한다. 2백개 이하의 산란(産卵)이면 사정없이 도태(淘汰),즉 살처분(殺處分)된다.

만약 거기 수용한 암탉이 종계라면 역시 케이지에다 따로 기른 수탉을 사육사가 꺼내어 한 쪽 겨드랑에 끼고 손가락으로 닭의 가슴언저리를 간질이면 사정(射精)을 한다. 그 정액을 접시에 받아 스포이트로 암탉의 항문에다 주입, 인공수정을 한다. 대개 수탉이 한 번 사정한 것으로 15마리쯤의 암탉에게 수정시킬 분량이 된다. 암탉은 수탉구경도 못하고 수정란(受精卵)을 낳는다. 그리고 그 알은 부화기(孵化器)에서 깨이고 어미닭의 품을 모르는 병아리가 되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닭이라는 생명과 지각이 있는 생명체는 본래,저들이 즐겨야 할 자연환경과 자유는 없고, 사육자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혹사당하다 생을 끝낸다. 그런 양계에 싫증이 난 지금,산방에는 토종닭만을 기르고 있다. 이 땅에서 오랜 전통을 이어온 재래종은 우선 병에 강하고,관리에 손이 덜 간다. 근처 농가에서 분양받은 토종씨암탉이 알을 낳고 품더니 열 마리의 병아리를 까서 잘 길렀다.

그 열 마리 중에는 수탉이 4마리였는데 그들은 형,아우를 가리노라 연일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인다. 보다 못해 세 마리를 다른 데로 옮기고 그 중 한 마리만을 장닭으로 남겼다. 여섯 암탉을 거느린 이 녀석은 하루 종일 목청을 돋우어 우는데 "꼬꾜오오~"는 경쟁자를 모두 물리쳤다는 개가다. 그리고 여섯 암탉을 거느린 가장이 되어 텃밭으로,비탈로, 잔디밭으로 집 근처를 휘졌고 다닌다.

가다가 굼벵이라도 얻으면 널름 먹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꼬! 꼬! 꼬!" 암탉을 부른다. 가까이 있던 흰 깃털이 많은 양순이가 쪼르르 다가가면 같은 암탉이건만 못마땅한 듯 아프게 쪼아준다. 그새 좀 멀리 있던 까투리 깃을 한 계순이가 와서 맛있게 받아먹으면,수탉은 한쪽 날개를 부채처럼 펴서 암탉을 에워싸며 구애를 한다. 굼벵이를 먹은 암탉은 얌전히 다리를 접고 앉으며 항문을 연다. 녀석은 거침없이 등으로 올라가 사랑을 나눈다.

어느 날부터인가 계순이와 양순이가 닭 가족 대열에서 보이지 않는다. 20여일이 지나서 계순이는 병아리 9마리를 데리고 풀숲에서 나왔다. 자기만 아는 장소에다 알을 낳아 모았다가 알이 많은 것을 보고 취소성(就巢性)이 생겨서 21일을 품어 부화에 성공한 것이다.

양순이도 같은 수순(手順)이었으나 부화에 실패했다. 수탉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으니 모두 무정란(無精卵)이었던 것이다. 장닭 녀석의 편애가 밉상이나 어쩌랴. 내가 아무리 저들을 관리한다 해도 애정 문제에까지는 끼어 들 수가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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