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꽃(細花)들

잔꽃(細花)들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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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6월 01일(목)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봄은 꽃으로 연다고 한다. 올해의 봄도 수많은 꽃을 피워서 초여름에게 전하고 이제 떠났다. 그중에는 화려한 꽃들이 많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도 있고 '화중왕(花中王)'이라는 모란도,백합도 있다.

   
어느 부호의 정원을 본 적이 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사람은 들여다 볼 엄두도 못낸다. 이름난 조경가(造景家)의 설계라는데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잘 배치되었고,값비싸다는 나무와 화훼(花卉)가 가득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도 자신은 중산층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화원에 들려보면 이전에는 듣지도,보지도 못하던 소위 고귀하다는 꽃과 나무들이 많다. 한 분(盆)에 천 만원대의 난(蘭)도 주저 없이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내 산방에는 화단이라는 게 없다. 수많은 꽃이 피고 지는 언덕에 집이 들어앉아 있는데 무슨 꽃밭이랴. 앞산과 뒷산이 나의 동산이니,도시의 그 어느 부호의 정원보다 크고,넓고,높다. 그의 꽃밭에 있는 것 같은 화초는 없으나 그러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화초들이 둘레에 가득하다.

봄이 시작될 때부터 핀 '산괴불주머니꽃'은 길가,비탈,마당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작지만 예쁜 이 꽃에 누가 '산고양이 불알주머니'를 뜻하는 이런 망측한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른다. 애기똥풀도 있다. 샛노란 예쁜 꽃을 피우는데 줄기나 잎을 끊거나 뜯으면 애기똥 같은 노오란 액체가 나온다. 그 진액은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꽃의 빛깔이나 모양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미나리아재비'도 있다. 다른 풀꽃에 질세라 산방둘레에 만개하여있다. 이 풀은 어릴 적에는 좋은 들나물로 봄철의 입맛을 돋우어 주기도 한다.

5월 하순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는 '망초'는 지금 개화하여 가을까지 피고 지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꽃이다. 나는 이 꽃을 볼 때마다 아릿한 아픔을 느낀다. 사회에서 삶에 부대끼는 사람들이 다 성공적인 인생이기는 어렵다. 실패하면 이 산골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소위 화전민(火田民)이다. 이 방그러니 골짜기에도 한때는 수 백 세대였다고 한다.

그들 화전민들의 삶은 눈물겨운 데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화전민의 집은 남하 밀정들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1970년대에 정부에서는 산에 사는 이들에게 약간의 목돈을 쥐어주고 모두 강제 하산시켰다. 지금 나의 등산로는 저들의 생활의 터전들을 스치는데,거기에는 예외 없이 망초가 촘촘히 피어 저들의 흔적을 가리워 주고 있다. '망초' 혹은 '개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어주오'라던가.

마당가 습지에는 물봉숭아 군락이 있고 그 식생(植生)이 아주 촘촘하다. 꽃에도 성깔이 있다면 이 물봉숭아는 하늘색의 푸른 깔끔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말라'라나. 우리가 아는 수국(水菊)은 의사화(疑似花)다. 즉 꽃을 닮은 잎이 모여서 꽃처럼 보이게 하는 식물이다. 산방 개울가와 숲이 깊은 으슥한 곳에는 야생수국이 많다. 물봉숭아와 닮은 파아랗고 청초한 이 꽃을 보노라면 사람들은 왜 이대로 즐기지 않고 개량이라는 걸 했을까 의아해진다.

위에 쓴 꽃들은 모두 화관(花冠)이 작다. 나는 이들을 '잔꽃'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이들 꽃을 좋아하게 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너무 인간사(人間事)와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연예계,스포츠계 등에는 존재가 화려한 스타들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존재인 그들보다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꽃 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 사회 저변에서,농촌에서 드러나지는 않으나 그들에게서도 한때는 유명연예인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음을 본다.

마치 우리 산야에 널려있는 '잔꽃'들을 눈여겨보면 비록 작지만 이름난 꽃처럼 곱고 예쁠 때가 있음이 그렇다. 누가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건만 스스로 자라고 피는 '잔꽃'들은 세상을 장식하고 저들을 찾는 벌과 나비에게 꿀과 화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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