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와 관심

악수와 관심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10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5월 03일(수) 00:00
여기는 강원도, 내 산방으로 돌아왔다. 이곳의 한파(寒波)는 나같은 고혈압환자가 견디기 어렵다. 의사의 권유로 매해 12월 1일이면 우리나라에서 겨울이 제일 온화한 제주도로 간다. 치악산 중턱에 있는 집을 떠나 이듬해 3월 말, 치악산에도 봄기운이 감돌 때면 인간 철새인 나의 겨울나들이가 끝난다.

   
물론 그곳에서도 교회에 나갔다. 자기 교회 소속 교파에 너무 집착해서 생기는 폐단을 알기에 개신교 중에서 장, 감, 성,(長 監 聖)세 교회 중에 거처(居處)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예배당을 택한다. 2년 전부터는 한라산 남녘의 서귀포에 숙소를 정한다. 다행이도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기독교장로회서귀포○○교회가 있었다. 출석교인, 5백 명 쯤 되는 것 같다.

서귀(西歸)에서 처음 맞는 주일,오전 11시에 교회 뜰에 들어서니 마당에는 교인을 환영하는 영접위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일열종대로 서서 매사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아마도 장로,안수집사 등 임직들일 것이다. 악수를 끝내고 현관에 들어서니 거기에 또 안내위원 분들이 4~5명 서 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계단을 올라가 2층 대예배실 로비에 목사님으로 보이는 분과 중직들이 또 손을 내민다. 마당에서부터 예배석에 앉기까지 악수를 나눈 사람은 20명은 되는 것 같다.

다음주 두 번째 주도 전 주일과 똑같은 영접을 받았다. 2년 겨울동안, 지난 설날은 주일이어서, 육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지낸 날을 빼고는 비록 낮 대예배시간 뿐이지만 단 한주일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다. 참석교인을 향한 환영의 악수는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교회가 교인을 환영하는 과정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초신자는 가려서 따뜻하게 맞아 주어,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임을 체험하게 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저들을 제외한 기성교인들은 주일이라면 당연히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禮)와 배(拜)로써 뵈어야 한다. 왜 주일마다 위원들이 예배당 안팎에 도열해서서 가출하였던 탕자를 맞는 아버지처럼 환영을 해야 하는가.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공경은 오히려 예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은 저서 '생활(生活)의 발견(發見)'에서'중국인들은 타인과 인사할 때 자기 손을 자기가 잡고 인사를 한다'며 상대의 손을 잡는 서양식 인사를 불합리하다고 비하(卑下)했다. 그렇다. 20명 내외의 환영위원들과 악수를 하노라면 위생면에서도 혐오감을 느낀다. 콧물감기가 채 낫지 않은 장로도, 화장실 갔다가 잊고 손을 못 씻은 집사도 있을 것이다. 요즘같이 조류독감(AI)을 조심해야 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많은 악수를 한 손을 예배시간 내내 주체키 어려웠다. 숙소에 돌아오면 먼저 비누로 손부터 씻는다. 나는 노약자니까 조심한다.

놀라운 일은 겨울 동안만이라고는 하나 2년 동안 한주일도 결석하지 않고 예배에 참석한 사람에게 그 교회에서는 한사람도, 단 한번도 이름을 물은 이도, 어디에 사느냐고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내가 말석에 앉아 예배만 드리고는 가능한 악수를 피하면서 귀가하기 때문이기는 하다. 출석교인 개개인에 대한 관심도 없는 예배시간 전 도열(堵列) 환영은 교회성장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교회는 심령을 다루는 곳이다. 가시(可視)적인 사랑, 악수는 과잉이고 심층(深層)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는 교회가 이 교회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는 "가장 심한 푸대접은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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