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의 노래

떠돌이의 노래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3월 07일(화)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지하철 공사로 교통체증이 심하던 80년대 말, 마포대교를 건너며 퇴근했다. 버스가 다리 위에서 오래 정지해있으면 처음엔 짜증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강물이 안개에 덮여 있을 때면 아련히 뱃고동 소리가 울려올 것 같았고, 맑은 날 서강 쪽에 피어난 짙은 노을은 내게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날이 그날처럼 자아를 잊고 사는 무의미한 일상에 노을은 유년시절의 소망을 떠오르게 했고 진하게 살라고 함성처럼 다가왔다.

   
어느 사이 노을이 풀려 어두워지던 강가, 허상처럼 사라지는 노을을 아쉬워하다가 옆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노래를 따라 불렀었다. 어느 날엔 "멀고 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로 시작되는 '스와니강'과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라"의 '꿈꾸는 가인' 등. 그때는 차안의 사람들이 노래를 함께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스와니강''꿈꾸는 가인'의 작곡자 포스터(Foster, Stephn C 1826-1864)는 신생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곡들을 만들었다. 미국은 원주민 인디언들과 소떼를 몰고 다니며 살던 카우보이들, 영국인에 이어 세계 각지에서 찾아든 이민으로 이뤄진 국가였다. 저마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찾아왔으나 타국에서 얼마나 향수를 느꼈으랴.

포스터는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아버지와 미국 태생 어머니의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흑인 가정부의 사랑 속에서 아일랜드의 풍부한 선율, 흑인들의 리드미칼한 선율을 많이 들은 것이 그의 음악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별한 음악교육도 받지 않고 피아노와 플루트, 기타도 치며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서 38세의 짧은 생애동안 2백 편의 노래를 남겼는데 특히 핍박받는 흑인들의 설움에 연민을 갖고 그들의 정서와 애환을 담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오 수잔나' '올드 블랙 죠'와 '켄터키 옛집' 등이 그 대표 작품들이다.

'스와니강'의 원래 제목은 '고향의 노인들'(The Old Folks at Home)로 직업중창단의 요청에 써준 노래다. 내용은 남부지방을 그리워하는 흑인의 애수가 짙게 담겨 있다. 가사에 향수의 호소력을 살리려고 포스터는 가본 적도 없는 남부의 스와니강을 넣었는데 남녀노소와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환호해서 몇 달 동안 팔린 악보만 해도 12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스터는 '스와니강' '켄터키 옛집'을 고비로 영감이 메말랐는지 서른 살 전후부터는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갔다.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재기의 꿈을 안고 떠난 때가 서른 네 살이었다. 그러나 타향에서의 고달픈 생활에 곡상도 떠오르지 않아 과음하며 가난에 시달렸다. 그 때 그는 자신의 히트곡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지 않았을까. '멀고 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의 '스와니강'을굨 몇 년 동안 알콜과 결핵으로 신음하던 포스터는 하숙집 욕조에 부딪혀 경동맥이 끊어져 사흘만에 숨을 거뒀다.

그가 떠난 후 누추한 하숙방에서 발견된 '꿈꾸는 가인'은 만인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었다. 불행 속에서 빛나는 이상의 세계를 꿈꿨던 그가 숨지기 며칠 전에 썼다는 'Beautiful Dreamer'(꿈꾸는 가인)에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다리 위의 밀리던 차안에서 포스터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하며 탑승객들을 보면 그들 역시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온 이들 같았다. 당시 어지러운 정국과 어두운 현실에서 한강과 여러 가지 역경을 지나 가나안 복지에 가려던 것처럼 줄지어 있던 자동차들. 이제는 그 행렬 속에서 도약을 꿈꾸던 사람들도 오래 전에 공사가 완료된 다리를 빠르게 지나듯 뜻을 잘 이뤘을까.

지금은 폭도 넓어진 마포대교를 순조롭게 지나지만 도회인들이 떠돌이 생활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때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쁘고 고달프게 떠도는 이들의 마음속에 그리운 '스와니강'의 물줄기 하나 간직하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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