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한(避寒)의 변(辯)

피한(避寒)의 변(辯)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2월 15일(수) 00:00
내가 사는 곳은 강원도다. 그곳의 기후는 입춘이 지났건만 오늘도 영하 19도를 오르내린다고 보도(報道)들은 전한다. 길이 빙판을 이루어 아침 출근길이 아우성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마을 제주 서귀포에 있다. 여기는 길을 가다보면 길가 곳곳에 동백(冬柏)과 매화가 피어있다.

   
우리 사회에서 피서(避暑)라는 말은 익숙하다. 지난 여름 내외 피서지를 다녀온 사람은 2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 총수의 반이 되는 사람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근년 들어 더 그렇게 떨쳐나서는 것 같다.

그 원인 중에는 민족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굨 단일민족이 농경사회에서 정착생활을 하다보니 생활양식에서 이웃이 하는 것과 동일해야 어울릴 수 있고, 자기도 그 사회에 일원이라는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리라. 옆집에서 학원에 보내니 우리아이도, 앞ㆍ뒷집에서 피서를 간다니 만사 제쳐놓고 그 고생길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좀 생소한 말, 피한(避寒)이 필요한 사람은 북쪽이라서 겨울이 너무 춥거나,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나같이 혈압이 높아 겨울추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다. 의사들은 뇌졸중과 직결되는 겨울 추위를 조심하라는 데 그 말은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원주의 한 아파트단지는 가구수, 4백 여 세대에 불과한데 뇌졸중 환자가 30~40명은 된다. 통계가 없으니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제주에서는 뇌졸중, 즉 중풍환자는 드물어 별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고령자는 피서가 아니라 피한이 더 긴하다는 내 사고(思考)의 전환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겨울의 기후가 추워서 피한을 한다면 갈 곳은 많다. 미국 남가주(南加洲)로 영주하러 간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장 선생! 노후는 여기서 지내시오, 정부의 고령자정책이나 기후로나 여기가 노인들의 천국이요"한다. 기회가 있어 그 천국이라는 곳에서 달포를 지내보았다. 영어를 못하는 나는 언어와 풍속, 생활법규가 다른 그곳은 담장만 없을 뿐 감옥이었다.

국내외에 알려진 H회사에서 퇴직한 '변씨'가 노후를 보내고 있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교외(郊外)의 고급주택가에서 살고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달에 우리 돈으로 월80만원만 가져도 이런 주택에서 대형차 굴리고, 가정부 두고 살아보니 제왕이 따로 없다"며, 나 뿐 아니고 약삭빠른 일본 은퇴자들이 이런 생활을 많이 누린다고 한다.

나는 정서와 언어와 치안 등을 따져 제주를 택했다. 강원도 치악산 밑의 12월 초순경은 이미 겨울이다. 자고나면 유리창에 성에가 끼고, 마당가 개울물에 어는 얼음이 을씨년스럽다. 짐을 꾸려 원주 발, 제주행 비행기를 탄다. 약 한 시간 거리다굨 공항에 내리면 부드러운 공기가 몸에 감긴다.

시내로 차를 달리노라면 머리채 흐트러진 야자(椰子)가로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는 서귀시를 선호한다. 한라산이 바람을 막아준다던가 산북(山北)지역보다는 기온도 3~4도는 높았다. 이곳 제주는 기후학적으로 아열대기후지대(subtropical climate)에 속한다는 제주대학 유종인 교수의 말이다.

12월초부터 3월말까지 4개월은 제주, 서귀에서 지낸지 4년째다. 주거(住居)는 육지의 지방도시 원룸, 월 30~40만원과 비슷한 임대료면 된다. '제주의 폭설'보도가 요란하지만 그것은 중산간과 한라산 고지의 얘기다. 서귀 하늘에도 눈발이 날리는 때가 있지만 땅에 쌓이는 걸 보지 못했다.

방한복은 가져올 필요가 없다. 백바지에 라운드티나 걸치고, 산책 겸 재래시장에 들려 보라, 값싸고 신선한 생선과 후한 인심으로 듬뿍 주는 야채를 사면 좋다. 때로 파도 철석이는 해변가를 거니노라면 동장군(冬將軍)은 먼 나라 얘기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