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주인공

개혁의 주인공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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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5일(화) 00:00
   
이승하/해방교회 목사
이승하
해방교회 목사

물이 고이면 언젠가는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물은 흘러야 맑고 살아있는 것이다. 문화는 흐른다. 문화는 정체되어 있을 수 없다. 하나의 기관도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쉴 새 없이 새로워 졌다. 외부적으로는 박해를,내부적으로는 이단을 물리쳤다. 그리고 자체를 정화하는 개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기간에도 수도원에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다.

누가 교회를 개혁해 가는 것이 가장 건전하며 신앙적으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자신들이 스스로를 점검하여 잘못된 것이나 왜곡된 것을 찾아서 바로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자체 정화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것이 성령운동 또는 경건운동 그리고 청교도들의 대각성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다. 이렇게 되려고 하면 "내 탓이요"라는 자각과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회개운동이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운동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체 개혁은 결코 일어나지 못한다.

또한 개혁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다. 타인이 나를 개혁하는 결과가 된다. 기독교가 다른 세력에 의해서 개혁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 한국 교회가 침체된 것을 피부로 느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는 침체,천주교는 정체,불교는 부흥되었다고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천주교로 조금 갔고,많은 사람들이 불교로 갔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다른 종교를 말할 필요는 없다. 왜 그들이 교회를 떠났는가? 기독교에 대한 실망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이 아니라 교회의 현상을 보면서 즉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삶을 보면서 실망하고 떠난 것이다. 개혁해야 할 것이 많은 데 개혁하지는 않고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분열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스스로를 개혁할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 먼저 개혁을 부르짖을 수 있는가? 누가 돌을 들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되면 다른 곳으로 그 주역이 넘어간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개혁하고자 하면 책망이 먼저 나온다.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도 듣기에는 매우 싫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라면 수용해야 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책망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진행된다.

개혁이 되었을 때 책망을 듣던 이들이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개혁하면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항상 자발적인 개혁을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개혁이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눈으로 보아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목사들이,장로들이 무엇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다. 알면서도 용기가 부족한지 아니면 안일하게 생각하는지 시작을 못하고 있다. 내 몸에 내 손으로 수술하는 칼을 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시해야만 살 수 있다면 감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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