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인생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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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떠나는여행 ] 믿음으로 떠나는 여행(24) - 섬 교회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를 찾아서(2)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5년 09월 14일(수) 00:00
증동리교회 정원 오른쪽으로 문준경 전도사의 기념비가 보인다. 사실 문준경 전도사는 증동리교회에서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섬마을 전체가 존경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녀는 6ㆍ25때 아무런 두려움 없이 공산군에 맞선 순교자일 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섬마을 사람들을 위한 친구요, 의사요, 위로자였다. 지금도 나이든 사람들은 문준경 전도사를 잊지 못한다.

   
몇 년 전 월드컵 기독교시민운동을 주도했던 전 CCC 총재 김준곤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문준경 전도사가 8살의 소년인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말하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곤 인터뷰를 잊었는지, 마치 문준경 전도사의 일생을 소개하는 듯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치매노인들을 친부모처럼 보살폈으며, 부잣집에서 음식을 얻어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문 전도사. 그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섬에 흉년이 들어도 굶어 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 여인의 헌신이 섬 전체를 완전히 복음화 시켰듯이 월드컵을 계기로 이런 크리스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김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문준경 전도사를 대하면서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교회당 오른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5분쯤 가면, 문 전도사의 묘소에 도착할 수 있다. 원래 이곳은 정씨 가문의 선산으로 그녀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지만, 문 전도사의 아름다운 생을 기념하여 온 가문이 찬성하여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마치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듯 묘소에는 무덤을 중심으로 널찍한 터가 준비되어 있다. 가을에는 낙엽으로 인해 묘소 전체가 소파마냥 푹신하다. 무덤 옆으로 문준경 전도사의 비석이 서 있고 그녀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 문구가 적혀있다.

"여기 도서의 영혼을 사랑하시던 문준경 전도사 잠들다"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2일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비록 작은 섬일지라도, 양반 가문에서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격도 밝고 명랑해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그녀는 시집가기 전까지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7세의 꽃다운 나이, 여러 혼담이 오고가는 가운데 문준경은 정근택이란 청년과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박복한 삶의 시작이었다. 꿈같은 신혼생활을 보내야 할 때 남편 정근택은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외박을 밥 먹듯이 하였고, 부인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거기에 동서의 시집살이까지 겹쳐서 문준경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물가에 물이라도 뜨러갈 참이면 이곳저곳에서 '소박맞은 여인'이라고 숙덕대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문준경이 이를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며느리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계시던 시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며느리를 위해 해주리라 생각하시던 시아버지는 평소 총명함이 빛나는 문준경에게 글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우고 싶었던 글인가! 어린시절 글을 가르쳐달라고 아버지께 간청했지만 여자가 글을 배워서 무엇 하느냐 핀잔만 들었던 상처가 이제 시아버지를 통해 치유되는 듯했다.

하지만, 버림받은 아내로서의 고통은 끝내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문준경은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 마당까지 달려 나갔으나 남편의 옆에는 만삭의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육지로 가서 첩을 데리고 온 것이다.

너무나 큰 상처. 그러나 이러한 상처도 참고 견디면 남편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첩의 아이까지 받아주고, 몸조리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의 싸늘한 눈초리와 첩의 핀잔 뿐. 문준경은 다시 외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를 만날 일이 있다며 잠시 집에 들른 것이다. 남편을 본 문준경은 그 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눈물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남남도 아닌데 너무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까닭이나 알려주세요."

그러나 남편 정근택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대답하길, "임금이 개하고도 말을 하느냐!"고 말했다.

개가 되어버린 문준경의 인생. 박복한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있어서 그녀는 그것까지도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소망의 끈,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이제 증동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그녀는 목포로 나오게 되었다.
<계속>

박귀용 목사
/누가성지교육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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